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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6,9~17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 학자.
최흥벽(崔興璧)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학(興學), 자는 사교(士敎), 호는 두와(蠹窩), 별호는 국옹(菊翁)이다. 최흥벽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으로, 봉사(奉事) 최동준(崔東峻)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원(崔慶源)이고, 할아버지는 최수강(崔壽崗)이며, 아버지는 최사석(崔師錫)인데 호는 요수(樂水)로, 효도·우애와 지극한 행실이 있었다. 어머니는 곽재삼(郭在三)의 딸인 현풍곽씨(玄風郭氏)이다. 부인은 사인(舍人) 오계후(吳季垕)의 딸인 고창오씨(高敞吳氏)인데 슬하에 문과에 급제한 최정진(崔廷鎭)과 최영진(崔迎鎭) 두 아들과 안찬중(安瓚重), 강문열(姜文悅), 정규석(鄭奎錫)에게 출가한 세 딸이 있다.
최흥벽은 타고난 재능이 출중하고 소시에 이미 문리가 뛰어나서 19세에 경상감영에서 백일장을 실시할 때 응시하여 참방에 들었다. 그러나 중년에 공을 들인 과거 시험에는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성공을 하지 못하였다. 만년에는 주로 『대학』, 『중용』, 『심경』, 『근사록』, 『주자서절요』, 『성리대전』 등을 읽으며 도학에 열중하였다. 영남 좌우도의 많은 학자들과 교유를 하였으며, 특히 백불암 최흥원의 수제자로 도학과 문장이 뛰어나서 큰 유학자가 되었다.
최흥벽은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문리가 뛰어나서 『통사』,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을 일 년 이내에 다 읽었다. 21세가 되던 1759년에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수학하여 급문생들과 더불어 『대학』, 『대학혹문』, 『통서』에 대하여 강론하였으며, 이종수(李鍾洙), 김종덕(金宗德), 이광정(李光靖), 정종로(鄭宗魯) 등 안동[지금 경상북도 안동시]·상주[지금 경상북도 상주시]권의 학자들과도 교유하였다.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행장」에 의하면, “덕업을 닦는 과정으로는 『대학』만한 것이 없고, 향하여 바라보는 데 표준이 되는 것은 오로지 『중용』에 있으며, 경(敬)이라는 글자가 또한 성학(聖學)에 있어 시종(始終)의 요체(要諦)가 된다.”고 말해 최흥벽은 이때부터 더 도학을 중시하였다. 저서로 『두와선생문집(蠹窩先生文集)』 17권 8책이 있다. 특히 주희와 퇴계 이황의 문집을 좋아한 나머지 학문에 절실한 것을 뽑아서 「심학연원초절통편(心學淵源抄節通編)」을 편찬하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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