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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복(朴勝復)
1898년(광무 2)~1959년. 자는 학명(學明)이고 호는 서간(西澗)이며 우양(遇陽)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배움에 부지런했다. 이동정(李東亭), 곽면우(郭俛宇)의 문인으로 약관에 이미 경전(經傳)에 통달했다. 더욱이 주자서(朱子書)와 퇴계서(退溪書)를 탐구(探究)하여 심학(心學)에 힘썼으며, 백가서(百家書)에 두루 관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서주(西洲) 김사진(金思鎭), 서포(西浦) 정태진(丁泰鎭), 소선(小仙) 황병흠(黃炳欽) 등 당대 유학자들도 모두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당시 지방의 유생(儒生)들은 대개 경·사·자집(經史子集)을 공부했으나, 서간(西澗)은 개화기 중국의 선각자인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棨超) 등의 저서를 통하여 서양에 관한 새로운 문물도 연마했다.
그의 가세는 본래 지낼만한 살림이었으나 중년에 어느 친구의 보증을 선 것이 화근이 되어 갑자기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려워 졌다. 그러나 한 결 같이 세념(世念)에 초연 하였으며 가사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글 읽는 선비의 품위를 지켰다. 일제강점기 때 풍기 봉현(鳳峴)에 살다가 만년에 일가가 사는 하한정(夏寒亭) 마을에 옮겨 후진을 가르치며 여생을 자적했다. 지은 글이 매우 많았으나, 문자를 남기지 않으려고 모두 없애버렸다. 뒤에 문도(門徒)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유문(遺文)을 모아 『서간문집(西澗文集)』 2권 1책을 발간했다. 소수서원장을 지냈다. 이유화(李裕和)가 갈명(碣銘)을 짓고, 김진수(金晋秀)가 묘지(墓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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