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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3-1-2
**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강숙(康叔), 호는 은포(隱圃). 조선 성종 때 문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의 16세손이다. 아버지는 송준필(宋浚弼), 어머니는 성산 여씨(星山呂氏)이다.
송수근(宋壽根)[1896~1969]은 1896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1길 15-14[고산리 535]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송준필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다. 1919년 유교계의 독립 청원 운동인 파리 장서 운동(巴里長書運動)과 성주 지역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중순경 아버지 송준필이 야성 송씨 충숙공파의 종택인 성주 백세각(百世閣)[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에서 송회근(宋晦根)·송인집(宋寅輯)·송규선(宋圭善)·송인건(宋寅健)·송인근(宋仁根) 등을 모아 놓고 진행한 문중 회의에 참석하여 송준필이 제안한 독립운동에 뜻을 모으기로 하였다. 이어 같은 달에 송준필이 쓴 독립운동 동참을 권유하는 편지를 장석영에게 전하며 의사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같은 달 하순경에는 사촌형 송회근이 내놓은 자금 1,000원을 김창숙(金昌淑)에게 전달했고, 송준필의 지시에 따라 복명동(復明洞)의 여보회(呂輔會)를 찾아가 자금 2,000원을 받아왔다.
송수근은 1919년 3월 29일 성주 백세각에서 송준필이 제작한 「국내 통고문(國內通告文)」을 송회근·송문근(宋文根)·송우선(宋祐善) 등의 족친들과 함께 각처로 배포하는 한편, 4월 2일의 성주읍 장날 만세 시위도 준비하였다. 그리고 김희규(金熙奎)에게 시위 계획을 전달해 동참을 권유했고, 송우선·송천흠(宋千欽)·송회근 등과 함께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성주읍 시장 장날 만세 시위에서는 송인집·송훈익(宋勳翼)·송문근·송규선·송우선·송천흠 및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3일 뒤인 1919년 4월 5일 자택을 찾아온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성주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30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고,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했지만,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69년 11월 27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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