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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3-1-1
**被傳者: 朴漢柱(1459~1504)
手書刻序: 鄭宗魯
跋: 朴蘭緖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박한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연산군 때 간관이 되어 왕의 실정을 극간하고 노사신·임사홍을 탄핵했다. 연산군의 횡포가 심해지자 외직으로 나갔으나,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도(門徒)로 분류되어 유배를 당하였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연루되어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迃拙齋). 고조할아버지는 행산(杏山) 박세균(朴世均)이며,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郞) 박돈인(朴敦仁)이다
박한주(朴漢柱)[1459∼1504]는 1483년(성종 14) 사마시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전생서 직장(典牲署直長)에 제수된 뒤 한성부 참군·사헌부 감찰을 거쳐 1491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후 성균관 전적을 지냈다.
1493년 부모 봉양을 위하여 창녕 현감을 청하여 나가 백성들을 지성으로 보살피고 교화시켜 임금이 비단과 교서로 포상하고 벼슬을 올려주었다. 임기를 마치고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종부시 주부를 거쳐 1497년(연산군 3) 사간원 헌납이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실덕(失德)을 직간하였고 또 임사홍(任士洪) 등의 간악함을 탄핵하는 차자(箚子)[일정한 격식 없이 사실만 간단히 적어 올리는 상소]를 올렸다. 연산군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자 외직을 청하여 평해 군수와 예천 군수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로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방한다는 죄명으로 장(杖) 80대를 맞고 평안북도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 1500년에는 전라도 낙안(樂安)에 이배되었는데, 이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재차 연루되어 군기시 앞에서 능지처사 당하였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오졸재집』이 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고, 1517년 김정(金淨)·조광조(趙光祖) 등의 계(啓)에 의하여 도승지 겸 예문관 직제학으로 추증되었다. 밀양 예림 서원(禮林書院), 함안 덕암 서원(德巖書院), 청도 남강 서원(南岡書院)에 배향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 김응조가 찬한 ‘오졸재 박한주 여표비명(迃拙齋朴漢柱閭表碑銘)’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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