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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진효는 1887년(고종 2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서 출생하여 1979년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김진효(金鎭孝)[1887∼1979]는 휘문 의숙을 졸업한 후 김우곤의 권유로 1906년 설립된 사립 문명 학교 교사로 취임하여 근무하던 중 1919년 운문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문명 학교 교사였던 김진효는 3월 17일 밤 김용구(金龍久)·손기현(孫琪鉉)·손한조(孫漢祚)·홍해성(洪海性) 등과 함께 문명 학교에 모여 만세 운동을 촉구하는 등 만세 운동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3월 18일 김진효는, 3월 15일 밤에 손기현과 김재화(金在華) 등이 격문을 만들어 부착한 사건과 관련하여, 김상구·김종태·손한조·김종식(金鍾軾)·강재식(姜在植)·홍용팔(洪龍八)·홍해성·김대선(金大善) 등과 함께 운문 주재소로 연행되었다.
취조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김진효의 선창으로 동민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운문면 사무소를 비롯하여 운문면 각 동리를 누비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진효는 만세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립 선전문(獨立宣傳文)’을 작성하여 국권 회복에 대한 민족적 의지를 역설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1919년 9월 25일 고등 법원에서 1년형을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만세 운동 이후 문명 학교를 사임한 김진효는 1924년 문명 학교 교장 김우곤(金禹坤) 등과 군자금 700원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전달하였다. 이 사건이 발각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유고(遺稿)로는 『구산소감(九汕所感)』을 비롯하여 『대한 의열록(大韓義烈錄)』과 『규윤문보감(閨閏門寶鑑)』 등이 있다.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 있다.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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