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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5상6
**序: 歲辛丑(1781)...李象晴
**본관은 의성. 자는 태수(台叟), 호는 서계(西溪). 아버지는 참봉 김관석(金關石)[1505~1542]이며, 어머니는 순천 박씨(順天朴氏) 박탄(朴坦)의 딸이다.
**김담수(金聃壽)[1535~1603]는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사사하였고, 덕계(德溪) 오건(吳健)[1521~1574]에게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배웠으며,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1517~1563]에게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웠다.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있었고,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행을 즐겼으며, 모든 행실이 겸손하였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도의로 사귀었다. 또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와 더불어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남긴 요결(要訣)을 거슬러 추구하였다. 1564년(명종 19)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건강으로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두문불출하며 경전 공부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항상 가내 법규를 엄중히 하여 친척 간에 친애함과 불의를 행하지 말 것을 강조하여 우애가 돈독하였다.
1591년(선조 24) 학행으로 천거되어 선공감(繕工監) 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도학을 닦고 후학을 진흥하는 일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야산으로 피란하였고, 정유재란 이후에는 안동과 상주 등지를 떠돌다가 상주에 정착하였다. 이익보다는 의리를 중히 여기고 가족과 친족, 이웃과 화목하였으며 실천을 중시하며 스스로를 수양하는 군자다운 삶을 추구하였다. 김담수는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학통을 모두 이어받아 이론적 경향과 실천적 측면을 동시에 흡수하였다. 여러 차례 참봉으로 불렸으나 나아가지 않자, 선조(宣祖)가 황계처사(黃溪處士)라는 호를 내렸다제품소재 | 상품페이지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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