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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20-조계종 종정 노천당(老天堂) 월하(月下)스님 묵서 10폭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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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크기:48*205센치 10폭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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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되어있는 상태로 택배는 안되며 용달이나 직접수령만 가능합니다,용달시 배송료 판매자가 50% 부답합니다

**현대의 고승. 1915년 음력 2월 25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천은 법호(法號)이고 법명이 월하(月下)이다. 속명(俗名)은 희중(喜重). 조선말 통도사에 주석했던 성해(聖海)스님의 사법제자(嗣法弟子) 구하(九河,1872-1965)스님의 법을 이었다.

어릴 때 집 근처의 고란사 스님들을 보면서 출가를 결심하였다. 이때 속가의 부모님이 설득했지만 결국 18세인 1933년 강원도 유점사에서 성환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득도한 후, 1940년 통도사에서 구하스님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고 법을 이었다. 오대산 한암스님 회상에서 안거를 성만하셨다. 1944년 4월 철원 심원사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1950년도부터 30여년간 통도사에 전계대화상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셨다.
이(理)와 사(事)를 두루 겸비한 스님은 1954년 효봉 청담 인곡 경산 스님과 함께 사찰정화 수습대책위원회에 참가해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섰다. 1955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 되었고, 1956년 통도사 주지를 하시면서 사찰내 폐습을 일소하고 강원과 선원을 복원했다. 또한, 상하이 임시정부에 많은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큰 자금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58년 조계종 총무부장 권한대행,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0년 중앙종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1970년부터는 통도사 조실로 통도사 보광전 염화실에 주석하며 통도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된다.
1975년 동국학원 재단이사장,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0년 종정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으며 1984년에는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1994년 종단 개혁때는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조계종 제9대 종정으로 취임했다. 1998년 종단사태 이후 2001년에 다시 영축총림 방장을 재추대 되어 영축총림 수장으로, 종단의 어른으로 자리하였다.
스님은 50여년 가까이 통도사 보광선원을 떠나지 않고 조실로 머물면서 눈푸른 납자들을 지도해왔다. 함께 수행하며 늘 수좌들을 자상하게 지도했던 스님은 졸음에 겨워하는 납자들을 야단치거나 죽비로 때리는 대신 “졸음이 올 때는 일어나 경행(輕行)하라”고 이르며 자비롭게 대해왔다. 언제나 문을 열어놓은 채 지위고하와 노소를 막론하고 방문자들을 맞았고, 대중운력에 빠지지 않고 손수 자신의 빨래까지 하는 수행자의 청규(淸規)를 지켜왔다. 詩(시) · 書畵(서화)에도 능했던 스님은 옛 조사스님들의 선시 전통을 이으면서도, 간단 명료한 언어와 선기 넘치는 선시를 지어왔다. 스님의 선시는 1998년 문도들에 의해 《월하대종사 상당법어집》으로 묶여진 바 있다.
월하스님은 자신의 가풍에 대해 “안으로 구하는 것이 없고, 밖으로도 구하는 것이 없는 것 자체”라고 말하였다. 대중교화에도 남다른 애정을 지녀, 1920년대 중반부터 통도사에서는 대중법회를 개설하여 한 달간 전국 고승들의 법문을 들려주는 화엄산림이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데, 이러한 교화사업이 안정되게 이루어지고 있는 데는 방장스님의 원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늘 통도사를 지키는 어른으로서 사격을 일으키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994년에는 종단개혁의 깃발이 오른 뒤 종정의 자리에 올라 종단어른으로 역할을 하였으며, 1998년 종단사태 이후 2001년에 다시 영축총림 방장으로 재추대되어 영축총림 수장으로 후진양성에 필력을 다하였다.
통도사가 오늘날 불지종가(佛之宗家) 총림(叢林)에 걸맞은 가람의 위용(偉容)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스님의 힘이 컸다. 특히 1992년엔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건립기금으로 아무도 모르게 1억5000만원을 희사하기도 했다. 상좌들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언론에 알렸다가 오히려 호된 꾸중을 들었다는 일화는 스님의 기품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월하스님이 2003년 12월 4일 오전 9시 15분께 세수 89세, 법랍 71세로 통도사 정변전에서 아래의 열반송을 남기고 열반하셨다.
一物脫根塵(일물탈근진)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頭頭顯法身(두두현법신)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莫論去與住(막논거여주) 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
處處盡吾家(처처진오가)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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