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사진참조)
크기:35*140센치
보외2층사무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일원(一元), 호는 차강(此江)·강재(江齋)·강옹(江翁)이다. 1874년(고종 11) 8월 13일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권돈인(權敦仁)의 문인으로부터 글씨를 배워 1893년 양양 낙산사(洛山寺)에서 열린 전국 한시백일장 휘호 경시 때 장원을 하면서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 뒤 '동대문 밖에서는 박기정을 따를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씨에 뛰어났는데, 특히 행서를 잘 썼고, 예서와 초서에도 능하였다. 그러나 글씨보다는 그림을 많이 그려 사군자 가운데서도 난(蘭) 그림은 당대에 따를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도 그의 난 그림을 보고 "죽(竹)은 내가 낫고 난은 그대가 낫네"라고 평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군자 외에 괴석도(怪石圖)·포도도(葡萄圖)·노송도(老松圖)도 그렸으나 많지는 않고, 산수화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는 유인석(柳麟錫) 의진(義陣)에 가담해 영월·평창·정선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유인석이 평창의 대화(大和)·봉평(蓬坪)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할 때도 앞장섰다. 일제강점기에도 김구(金九)·이승만(李承晩)·여운형(呂運亨) 등과 계속 연락을 취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평생 강릉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5)과 평창의 주거지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시와 술과 서화로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랬다. 그의 작품에 산수화가 거의 없고, 사군자 등 문인화가 많은 것은 그의 꼿꼿하고 엄격한 기질 때문이다. 만년에는 작품활동과 후진양성에 힘썼는데, 제자로는 그의 손자인 화강 박영기(化江 朴永麒, 1922~)와 서화가이자 민주화운동가·사상가였던 청강 장일순(靑江 張壹淳, 1928~1994)이 있다. 청강은 지금까지도 영동(嶺東) 제일의 화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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