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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0
완질은 14권7책임
보78-3-1
**최림
1779년(정조 3)∼1841년(헌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부(贊夫), 호는 외와(畏窩).
부친은 최종윤(崔宗崙)이며, 모친는 밀성박씨(密城朴氏) 박태진(朴泰鎭)의 딸이다.
수재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7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10세에 인(仁)이 되는 근본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적어두었는데, “효도의 효(孝) 자는 아들 자(子)에 나왔고, 공경할 제(悌) 자는 아우 제(弟)에서 나왔다. 글자는 다르지만 그 도리는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1840년(헌종 6) 추천되어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다. 만년에 운문산(雲門山) 공암(孔巖)에 자리를 잡았는데, 배우려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성력(星歷)‧병학(兵學)‧기수(箕數)의 글에 모두 통달하였고, 자신의 위한 학문인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매진하였다.
문집으로 『외와집(畏窩集)』이 남아있다. 이 책은 그의 증손 최임수(崔任壽)가 편찬하고 간행을 보지 못하고 죽자, 종손 최진수 등의 주선으로 1899년(광무 3)에 간행하였다. 문집의 내용 중 시는 대개 은일의 고고한 한가로움을 서술한 작품 등이고, 서(書)의 「상강재선생(上剛齋先生)」은 학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위기지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국가적 차원에서의 도덕‧예악의 성쇠 여부에 따라 치란(治亂)이 반비례됨을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 변증했다. 잡저(雜著) 중 「경의회정(經義會精)」은 『주역』의 건원형이정(乾元亨利貞)을 해설한 것으로, 정주(程朱)의 설을 토대로 학자가 지향할 바를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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