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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임동혁(任東爀) 음악과 문화(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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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좋음 보80-3-3 ***임동혁 1930년대 전반기 연희전문(延禧專門)의 음악부에서 현제명의 지도 아래 김관(클라리넷)·서남용(첼로)·한태일(바이올린)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6년 이화여대(梨花女大) 음대 교수를 역임한 그는 일본 유학 중 일본의 음악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1938년에서 1940년까지 3년 연속 입선했다. 1939년 6월 8~9일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작곡발표대음악제」(全朝鮮作曲發表大音樂祭) 때 성악곡 "전설"(傳說)·"이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 및 관현악곡 "소관현악을 위한 희유곡"을 발표하였다. 193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창작발표회 때 "관현악을 위한 디베르티멘토"를 발표하였다. 1941년 3월 25일 설립된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의 이사 14명 중 한국인 이사 함화진·김관·계정식·김원복·김재훈 및 평의원 홍난파·김세형·이애내·이종태·장인식·노창성·김영환·김매리와 함께 활동하였다. 저서로 『음악과 문화』(1948)가 있고, 편저로 『여성창가집』(1946)이 있다. 일제강점기 그가 작곡하고 윤석중(尹石重)이 작요(作謠)한 "샘"의 오선보는 『少年』(1938) 2권 6호에 게재되었다. 일제강점기 그가 작곡하고 윤석중이 작요한 동요 "눈 굴리기"·"눈 받아 먹기"·"얼음"의 오선보는 『少年』(1939) 3권 1호에 발표됐다. 그의 근황은 『朝光』(1939) 44호에 발표한 백옥부(白玉斧)의 "임동혁·임상희 양씨 가정 방문기"에 소개됐으며, 전일본음악콩쿠르의 작곡부에 3등으로 입선된 소식은 『博文』(1940) 14호의 음악실에 소개되었다. 전일본음악콩쿠르의 관현악 작곡에 입상했다는 소식은 『文章』(1941) 3권 1호에 발표한 윤석중의 "동경통신(東京通信)"에 소개됐고, 그의 작곡집 『관현악곡: 네 개의 조선소풍곡(朝鮮小風曲)』은 『新時代』(1941) 8호의 광고에 소개됐다. 그가 편곡·지휘한 동요를 녹성동요회(綠星童謠會)·백양동요회(白羊童謠會)가 취입한 노래는 오케음반에 전한다. 그의 글 "기계(機械)와 음악"은 『新時代』(1941) 5호에, "다방과 음악"은 『文章』(1940) 2권 3호에, "물과 음악"은 『朝光』(1937) 22호에, "시국(時局)과 음악"은 『新時代』(1941) 10호에, "신인음악회를 듣고"는 『朝光』(1938) 34호에, "新時代를 상징하는 듀뷰씨 음악의 양식"은 『朝光』(1938) 27호에, "영감(靈感)"은 『博文』(1940) 16호에, "음악수첩(音樂手帖): 작곡가"는 『朝光』(1937) 26호에, "음악수첩: 우견(偶見)·우감(偶感)"은 『博文』(1939) 13호에, "음악수첩"은 『博文』(1939) 12호에, "음악수첩"은 『朝光』(1937) 23호·24호에, "음악시평"은 『文章』(1940) 2권 6호와 『文章』(1940) 2권 7호·8호 및 『文章』(1941) 3권 3호에, "음악야화(音樂夜話): 쇼팽의 연애와 작곡"은 『女性』(1940) 5권 6호에, "음악의 일년"은 『新時代』(1943) 3권 12호에, "음악잡기"(音樂雜記)는 『朝光』(1937) 25호에, "이인선씨 독창을 듣고"는 『朝光』(1937) 21호에, "잡필"(雜筆)은 『三千里』(1940) 12권 7호에 각각 발표되었다. 해방 후 『대조』(1946) 7월에 발표한 "민족음악 수립의 제창"은 민족음악의 수립과 관련된 대표적인 글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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