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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정탁(鄭琢) 약포선생문집(藥圃先生文集)권2,4終 2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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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정탁(鄭琢) 약포선생문집(藥圃先生文集)권2,4終 2책 상태좋음 크기:20.8*31센치 보25-4-2 **1526(중종 21)∼1605(선조 38).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 · 백곡(栢谷)으로 정이충(鄭以忠)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경상북도 예천 출신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명종 7년(1552) 사마시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1565년 정언을 거쳐 예조 정랑 · 헌납 등을 지냈다. 선조 1년(1568) 교리 겸 춘추관 기주관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72년 이조 좌랑 · 응교에 이어 도승지 · 대사성 ·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81년 대사헌에 올랐으나, 장령 정인홍(鄭仁弘) · 지평 박광옥(朴光玉)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간원의 계청으로 이조 참판에 전임되었다. 이듬해 진하사로 명나라에 갔다 와서 다시 대사헌에 재임되었다. 그 뒤 예조 · 형조 · 이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1589년 우찬성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시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이듬해 영위사로 명나라 경략 송응창(宋應昌)을 영접하였다. 1594년 우의정이 되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72세의 노령으로 스스로 전장에 나가서 군사들의 사기를 앙양시키려고 하였으나 왕이 연로함을 들어 만류하였다. 특히 같은 해 3월에는 옥중의 이순신(李舜臣)을 극력 신구(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으며, 수륙병진협공책(水陸倂進挾攻策)을 건의하였다. 1599년 병으로 일시 귀향하였다가 이듬해 좌의정에 승진되고 판중추부사를 거쳐, 선조 36년(1603) 영중추부사에 올랐다. 이듬해 호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하여졌고,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박학다식하여 경사는 물론 천문 · 지리 · 상수(象數) · 병가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94년에는 곽재우(郭再祐) · 김덕령(金德齡) 등의 명장을 천거하여 전란 중에 공을 세우게도 하였다. 예천의 도정 서원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정간(貞簡)이며, 저서로는 《약포집(藥圃集)》,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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