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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허목(許穆) 기언(記言) 18책(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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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허목(許穆) 기언(記言) 18책 상태좋음 크기:30*20.2센치 **기언 목록 1책완 기언 본문 67권11책완질중 권54~60 1책낙권 기언 별집 26권9책완질중 권25,26 2책낙권 보13상4 **허목(許穆) 조선 중기 문신·학자.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 호는 미수·대령노인(臺嶺老人). 본관은 양천(陽川). <학(學)·문(文)·서(書)의 3고(三古)>라 불렸으며, 특히 전서(篆書)는 동방 제1로 칭해진다. 대유학자였으나 관직에는 오르지 않다가, 56세인 1650년(효종 1)에 처음으로 정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1개월만에 사직하였다. 1657년 지평(持平), 1658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1660년 효종의 상에 인조의 계비(繼妃) 조대비(趙大妃)의 복제(服制)로 일어난 제1차 예송(禮訟)에서 서인 송시열(宋時裂)의 기년설(朞年說;1년설)에 반대, 3년상을 주장하다 서인의 반격으로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1674년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에 다시 조대비의 복제가 문제되자 서인의 대공설(大功說;9개월)에 반대, 기년설을 주장한 제2차 예송에서 승리하여 대사헌이 되었다. 이어서 이조참판·우의정을 지냈고, 송시열 처벌에 강경론을 내세워, 온건론을 편 같은 남인인 허적(許積)과 반목하여 청남(淸南)의 영수가 되었다. 1676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고, 1678년 사직하였다. 1680년 경신환국(庚申煥局)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삭탈관직 당하고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마전(麻田) 미강서원, 나주(羅州) 미천서원, 창원(昌原) 회원서원(檜原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동사(東事)》 《미수기언》, 글씨로 삼척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그림으로 《묵죽도(墨竹圖)》 등이 전한다. 시호는 문정(文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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