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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열전(高麗史列傳)권지24 1책(1600년경(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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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경(17세기)목판본 고려사열전(高麗史列傳)권지92 1책낙질 상태는 사진과 같이 표지부분 떨어진곳있으며 나머지는 양호함 크기:28.6*19.5센치 보20상3 **궁예말년에 해당되는 시기의 고려충신 신숭겸,복지겸,배현경등이 기술되어 나오는 고려시대 관련 대표적역사서임 **고려시대의 역사서. 1449년(세종 31)에 편찬하기 시작하여 1451년(문종 1)에 완성되었는데 고려시대의 역사·문화 등의 내용을 기전체(紀傳體)로 정리한 책으로 고려시대 역사연구의 기본자료이다. 고려 국사의 편찬은 고려말기 이제현(李齊賢)·안축(安軸)·이인복(李仁復) 등이 시도한 《국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완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태조의 명에 따라 정도전(鄭道傳) 등이 편찬을 시작했고, 그 뒤 여러 차례 개수(改修)되어 1451년(문종 1)에 《고려사(高麗史)》가 간행되기까지 6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396년에 완성한 정도전의 《고려국사(高麗國史)》는 조선건국의 합리화 내지 논리적 근거를 찾기 위해 고려 말기의 사실(史實)에 많은 곡필을 가했으며, 또 사사롭게 자기의 정적(政敵)들을 깎아내렸다. 그리고 조선의 국시(國是)인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명분을 내세우기 위하여 고려의 주체적·자주적 사실과 그 왕실 외교 등의 용어까지 삭제하였다. 이 《고려국사》는 37권의 분량이지만 사서(史書)로는 무가치한 것이 되었다. 게다가 단시일에 편찬되고, 찬자(撰者)인 개국공신들의 주관이 개입되었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태종이 즉위한 뒤로는, 조선 건국과정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는 문제성이 제기되었다. 그 뒤 세종은 1419년(세종 1) 9월에 유관(柳寬)·변계량(卞季良) 등에게 개수를 명하였으나, 변계량은 고려 원종 이전의 여러 왕의 묘호(廟號)를 참칭(僭稱)이라 하여 삭제했고, 또 《고려실록(高麗實錄)》에 나타난 고려의 왕실용어 등을 개서(改書)하였다. 이에 세종은 1423년(세종 5)에 유관과 윤회(尹淮)에게 명하여 제2차 개수작업에서 문제되었던 대로 직서(直敍)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윤회는 《수교고려사》를 완성하였는데, 이 책도 내용이 소홀함이 많아 다시 권제 등에게 명하여 《고려사전문(高麗史全文)》의 간행을 보았다. 이것도 권제가 자기 조상에 대한 기술을 사실과 다르게 기록했고, 또 남의 청탁을 받고 고쳐쓰는 등 공정성이 결여되어 반포가 중지되었다. 1449년(세종 31) 세종은 김종서(金宗瑞)·정인지(鄭麟趾) 등에 명하여 다시 수정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때에는 전부터 논의되었던 사체(史體)의 문제가 제기되어 종래의 편년체(編年體)에서 기전체로 편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대대적인 편찬작업에 들어가 1451년(문종 1) 8월에 김종서 등에 의하여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연표(年表)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 총139권의 《고려사》가 편찬되었다. 완성된 뒤 김종서·허후·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 등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하여 찬자의 이름에서 삭제되고 정인지만 남게 되었다. 《고려사》의 완성은 세종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이 《고려사》는 139권의 기전체 사서로, 고려에 관한 사서 중 편년체의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함께 가장 종합적이고도 기본적인 사료(史料)가 된다. 여러 번의 개찬과정을 통하여 《고려사》는 내용이 크게 보완되었는데, 고려시대의 실록자료가 빠짐없이 이용되었고, 《고려국사》 이래의 편찬과정에서 크게 문제되었던 인물평가에 대하여도 객관적인 서술로 개서되었다. 《고려사》는 각 편 중 <지(志)>와 <열전(列傳)>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는 12지로 분류되어 있고, 각 <지>에는 고려의 문물·제도·풍속이 상세하게 거의 망라, 정비되어 있는데 중앙집권적 체제에 대한 지배계급의 관료주의 제도도 잘 정비되었다. 그러나 이들 <지> 전부가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고, 단순히 자료나열·자료 수집에 그친 부분도 없지 않다. 다음 이 책의 <열전> 50권에는 후비(后妃)·종실(宗室)·제신(諸臣)·양리(良吏)·충의(忠義)·효우(孝友)·열녀(烈女)·방기(方技)·환자(宦者)·혹리(酷吏)·폐행(嬖幸)·간신(姦臣)·반역(叛逆) 등의 항목으로 나누었는데, 이 <열전>을 가장 중시했고 여기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열전> 전부가 공정하게 기술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고, 곡필(曲筆)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편견은 사실 당시 인물평전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기는 하나, 의식적인 혹평은 정치현실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고, 어떤 인물의 행적 등을 미미하게 다룬 것은 유교적 평가에서 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고려사》는 고려의 역사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고려사》는 집대성과 망라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편찬에 참여한 사학자들이 유교주의에 젖어 있어 관념과잉(觀念過剩)에서 오는 냉정성을 잃은 대목들이 많으나, 이것은 조선초기 문화에 대한 비판이 정립되지 못한 데서 온 하나의 과오일 뿐이다. 《고려사》가 이러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자료가 모두 인멸된 오늘날에 와서는 기본자료가 되고 있으며, 또한 시대를 전폭적으로 이해·정리하려 한 사관(史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139권 100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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