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정보
상품 기본설명
석문시고(石門詩稿)3권1책완질 장후상(張后相)(1910년(庚戌)목판본)
상품 상세설명
1910년(庚戌)목판본으로 간행된 인동(仁同)장씨인 장후상(張后相)의 시문집으로 이인좌의 난 관련 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석문시고(石門詩稿)3권1책완질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32*21센치 보21-2-1 **장후상(張后相) 1677(숙종 3)∼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몽여(蒙予), 호는 석문(石門). 안동출신. 아버지는 첨지중추 유(瑜)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돈(墩)의 딸이다. 장신(張신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9년(숙종 25)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같은 방중의 김인지(金麟至)와 이도징(李道徵)이 시관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합격된 사실이 발각되어, 시험 자체가 무효화되고 홍패를 수거당하였다. 170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니 세상사람들이 선급제후진사(先及第後進士)라고 불렀다. 이 소문이 왕에게 알려져 1699년 급제자 중 부정에 관계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복방(復榜)되었다. 그뒤 성균관의 학유·학록·학정을 거쳐 1714년 박사가 되었고, 이듬해 전적에 올랐다. 1716년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720년 성균관직강이 되었다. 1722년(경종 2) 성균관사예를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이듬해 함흥의 능침실화사건에 이사상(李師尙)과 함께 봉심관(奉審官)이 되어 다녀왔다. 그뒤 양산군수로 나가서는 탐리를 다스리고,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며, 생업을 권장하는 등 선정을 펴 군민이 그의 공적을 추모하여 철비를 세웠다. 1726년(영조 2)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28년 이인좌의 난에는 근왕병을 일으켜서 적을 막았다. 저서로는 《석문시고》 3권이 있다. **序 ; 柳必永(1910) ,跋 ; 張鎭昊(1910)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장후상의 시집이다. 장후상은 안동출신이다. 어버지는 첨지중추 유(瑜)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돈(墩)의 딸이다. 장신(張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99(숙종 2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같은 방중의 김인지(金麟至)와 이도징(李道徵)이 시관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 합격된 사실이 발각되어 시험자체가 무효화되고 홍패(紅牌)를 수거당하였다. 170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니 세상사람들이 선급제후진사(先及第後進士)라고 불렀다. 이 소문이 왕에게 알려져 1699년 급제자 중 부정에 관계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복방(復榜)되었다. 그 뒤 성균관의 학유·학록(學錄)·학정(學正)을 거쳐 1714년 박사가 되었고, 이듬해 전적에 올랐다. 1716년 사헌부 감찰을 지내고 1720년 성균관 직강이 되었다. 1722년 성균관 사예를 거쳐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이듬해 함흥의 능침실화사건에 이사상(李師尙)과 함께 봉심관(奉審官)이 되어 다녀왔다. 그 뒤 양산군수로 나가서는 탐리를 다스리고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며, 생업을 권장하는 등 선정을 펴 군민들이 그의 공적을 추모하여 철비를 세웠다. 1726(영조 2)년 선전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28년 이인좌의 난에 근왕병을 일으켜 적을 막았다. 이 시집은 1910년 5세손 진호(鎭昊)가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유필영(柳必永)의 서문과 책 끝에 진호(鎭昊)의 발문이 있다. 권1∼2에는 시(詩) 219수, 서(書) 4편, 제문(祭文) 1편, 기(記) 1편, 권3은 부록으로 제문 5편, 행장, 묘갈명, 고유문 각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시(詩)는 각체별로 고루 배열되어 있고 시격(詩格)이 호방하면서도 청아하여 저자의 독특한 시취를 엿볼 수 있다. 「입춘야음(立春夜吟)」,「제야(除夜)」,「춘우(春雨)」,「조춘(早春)」,「추야(秋夜)」,「중추십사야(仲秋十四夜)」,「산중팔월(山中八月)」 등 계절의 변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또한 「양락정(兩樂亭)」,「금강정(錦江亭)」,「배견루(拜鵑樓)」 등 명승고적에 대한 시, 「우음(偶吟)」,「동헌독숙(東軒獨宿)」,「문두견유감(聞杜鵑有感)」과 같은 감회시 등 다양한 시재와 필치로 자연과 사상과 학문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서(書) 중 「여김노봉(與金蘆峰)」은 1728(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키기 위하여 김정(金 )과 협의하는 내용으로 불의를 도모한 무리들을 징벌하는 데 잠시도 지체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군대와 군량미의 준비를 위한 방책을 논의한 것이다. 「무신난기(戊申亂記)」는 이인좌가 청주에서 난을 일으켜서 각 지방을 유린한 사실과 조정에서 오명항(吳命恒)을 순무사(巡撫史)로 삼아 죽산에서 적을 대파한 사실, 이인좌의 무리인 정희량(鄭希亮)이 남하하여 영주지방으로 처들어온 일, 나학천(羅學川)은 의병장(義兵將), 김정은 사병장(司兵將), 저자는 사량관(司糧官)이 되어 영주 제민루(濟民樓)에서 적의 침공에 대비한 사실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상품 정보 고시
품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모델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국 또는 원산지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자 |
상품페이지 참고 |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
상품페이지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