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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당선생문집(二愚堂先生文集),부록 2책완질 권환(權환)(1813년(上之十三年癸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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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上之十三年癸酉)목판본으로 간행된 안동권씨인 권환(權환)의 시문집 이우당선생문집(二愚堂先生文集),부록 2책완질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31.2*20센치 **권환(權환) **1580(선조 13)∼1651(효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택보(宅甫), 호는 이우당(二愚堂). 아버지는 증사헌부집의 대기(大器)이며,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로 희도(希度)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부장(副將)이 되어 죽령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강화가 성립되어 적이 물러가 전투에 임하지는 못하였다. 1635년 장릉참봉에 천거되었으며, 그뒤 사옹봉사·직장 등을 지냈다. 1639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며, 1640년 예부좌랑, 1641년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 1646년 강원도사를 역임하였다. 그는 전형적인 청백리로서 조정에서 임금을 모시고 있을 때는 거침없이 직간을 하여 당시 문란한 당쟁의 와중에서도 공평하고 명분이 뚜렷한 정책을 펴려고 노력하였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학문을 권장하고 풍속을 순화시키는 한편, 인정(仁政)을 널리 펴서 많은 칭송을 받았다. **『이우당선생문집』은 권환(權口 ; 1580~1652)의 시문집이다. 권환의 자는 택보(宅甫), 호는 이우당(二愚堂),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 책은 그가 죽은지 백년간이나 초고(草稿)로 전해오던 것을 증손인 이호(以鎬) 등이 찾아내어 외현손인 김세준(金世口)에 맡기어 편집·교정을 하였고 그 후에 후손인 담 등에 의하여 1816(純祖 16)년에 간행된 듯하다. 권1·2에 시 219수, 권3에 소(疏) 4편, 서(書) 17편, 전문(箋文) 2편, 축문 1편, 제문 5편, 묘지 1편, 권4에 부록으로 만사 18수, 제문 5편, 행장·묘갈명·별묘봉안문(別廟奉安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당시(唐詩)의 전형으로 신선하고 우아하다. 친지들과의 화답시·증여시·차운시·만시 등이 주종을 이루며, 산뜻하고 밝은 시상으로 일관한다. 소의 「변무소(辨誣疏)」와 「분문소(奔問疏)」는 이괄(李适)의 난 때 안동지방의 선비들이 주동이 된 창의(倡義)운동을 전임감사 민성징(閔聖徵)이 무고한 것에 대하여 사실규명을 요청한 것으로, 논리가 정연하고 문장이 간결하다. 서(書)는 친지나 관리들에게 보낸 안부나 업무상의 편지가 대부분으로, 주로 당시의 정국과 시사를 논의한 것들이다. 「기시아(寄時兒)」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집에 없더라도 집안일과 농사일을 잘 돌보며,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한 글이다. 별지에 선유들의 배향에 대한 당시 학자들의 소와, 그 소에 대한 왕의 비답(批答)이 있다. 권환은 1580(宣祖 13)년 퇴계의 문인 대기(大器)의 아들로 안동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兄에게서 수학하고, 자라서는 한강 정구(寒岡 鄭逑)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1610(光海君 2)년에 生員이 되니 兄弟 5인이 모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세상에 文章家로 이름이 났다. 1627(仁祖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江都로 임금을 호종하고, 義兵을 모아 副將으로 竹嶺에서 활약했다. 1635년 천거로 장릉참봉(章陵參奉)이 되고 1639년 文科에 합격하여 성균전적(成均典籍), 예조좌랑(禮曹佐郞), 강원도사(江原都事),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통예원봉예(通禮院奉禮)등 을 역임(歷任)하고 족사(旅舍)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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