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 > 고서적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전화문의

010-3845-4358

회원로그인

오늘 본 상품

  •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
    오한선생문집(鰲漢先
    200,000

커뮤니티 최신글

접속자집계

오늘
8,113
어제
12,048
최대
13,072
전체
6,939,140

옛날물건 재고 현황

고서적
2,927,825,000원/13,149건
근대도서
3,178,977,973원/40,211건
근대시집
367,507,500원/2,680건
희귀고서적
1,093,460,000원/2,720건
교과서
384,920,000원/4,574건
간찰
55,735,000원/1,057건
한국미술품
432,406,500원/3,679건
일본미술품
1,013,681,500원/24,023건
중국미술품
517,891,000원/9,886건
기타
996,453,500원/10,912건
전체합계
10,968,857,973원/112,891건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 > 고서적
리뷰 0 위시 0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 요약정보 및 구매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1899(木板本)上之25年)

상품코드 1136353353
제조사 또는 연대 1899(木板本)上之25年
모델 3000754
판매가격 200,000원
포인트 2,000점
배송비결제 주문시 결제
최소구매수량 1 개
최대구매수량 1 개

상품의 재고가 부족하여 구매할 수 없습니다.

상품 정보

상품 기본설명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1899(木板本)上之25年)

상품 상세설명

1899(木板本)上之25年 오한선생문집(鰲漢先生文集)3책완질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28.3*20.4센치 **오한 손기양(오漢孫起陽·1559, 명종 14-1617, 광해군 9)선생은 향시에 수차 장원을 거친 후 1585년에 상상(上庠-성균관)에 올라가, 4년이 지난 1588년에 칠경문과(七經文科)에 급제하여 성균학유(成均學諭)에 보임되었고, 이듬해에 성주학교수(星州學敎授)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생은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 밀양의 동북쪽에 있는 석동으로 집결시켜 최초로 의병의 깃발을 올렸다. 정유재란 때에도 팔공산성을 수호하고, 망우당 곽재우(忘憂堂郭再祐),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 등 여러 무장과 진중에서 군략을 논의한 사실들이 화왕산창의록(火旺山倡義錄)과 팔공산창의록(八公山倡義錄)에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중에 선생은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에 제수되었고, 1595년에는 신녕(新寧)현감으로 승진되어 난리 중의 백성들을 무마하고 선정을 베풀어 그 선정비(善政碑)가 현존하고 있다. 이듬해에 본도의 방백을 따라 공산성(公山城)을 지켰고, 1600년에는 성균전적(成均典籍) 겸 중학교수에(中學敎授)에 제수되고, 이듬해에 경주제독(慶州提督)이 되었다. 그 다음해에 울주판관(蔚州判官)에 제수되었는데, 한음 이덕형(漢陰李德馨)이 본도를 체찰(體察)하고 특별히 선생을 천거함에 '울주판관 손모는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여 선정으로 백성을 잘 다스린다는 소리가 자자하여 일세의 으뜸입니다.' 하였는데, 이로 인해 영천군수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영천 백성들의 풍속에 영등희(靈騰戱)라는 무당의 풍습으로 사녀(士女)들까지 마구 섞여 폐단이 많았는데 선생이 이를 깨우쳐 음란한 풍습을 교화하였다. 그러나 1603년 이후로 부모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상복을 입었고, 1610년에 창원부사가 되어 내려 올 때 시국의 혼란함을 <영설(詠雪>이란 시로써 나타냈다. 즉 <殘日西沈黑霧飛(잔일서침흑무비) 北風吹雪度荒비(북풍취설도황비) 長安人定鍾鳴後(장안인정종명후) 幾處黃金犯四知(기처황금범사지) 지는 해 서로 기울어 검은 안개 날리고, 북풍은 눈을 불어 거친 성가퀴 넘어가네. 장안 깊은 밤 종이 운 뒤에, 몇 곳에서 황금으로 사지(四知-왕밀이 양진에게 뇌물을 가져왔을 때 이를 거절하며 하늘과 땅과 당신과 내가 안다고 한 것을 말함)를 범하는가.)>하여, <지는 해>·<북풍> 등의 말로 당시의 혼란한 시국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후한의 양진(楊震)과 왕밀(王密)의 고사를 인용하여 뇌물로 얼룩진 세태를 개탄했다. 창원 부사가 되어 직무에 임하였으나 광해군의 폐모론으로 시국이 혼탁해져감을 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돌아오니 1612년 광해군 4년이었다. 그뒤에 조정에서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고, 다시 당상관으로 승진시켜 상주목사에 임명하였지만 또한 나가지 않았다. 일찍이 호를 송간(松澗)이라 하였으나 혼탁한 세상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여 오한(오漢)이라 호를 고쳤는데, 오(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때의 심정을 시로써 표현한 것이 앞에 나온 철조시(輟釣詩)이다. 영창대군이 화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비분강개하여 <豈有重華藏怒意(기유중화장로의) 恐傷文母止慈心(공상문모지자심) 중화(임금)께서 어찌 노여운 마음을 감추었으리오, 문모(인목대비)께서 자애로운 마음 상할까 두렵네.> 라 하여 우국충절의 뜻을 나타냈다.또한 한강 정구(寒岡鄭逑)·지산 조호익(芝山曺好益)선생의 문인으로, 우복 정경세(愚伏鄭經世)·석담 이윤우(石潭李潤雨) 선생 등 당시의 제현들과 종유(從遊)하였으며, 오휴자 안신(五休子安공)·조경암 장문익(釣耕菴蔣文益)과 같은 이는 선생의 문하생으로 뒷날 인망을 받게 되었다. 저술한 글도 많았으나 병화에 불타고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은 <배민록(排悶錄)> 2권과 <철조록(轍釣錄)> 1권이 있을 뿐이고, 이를 합쳐 오한선생문집이 발간되었다. **밀양 칠탄정에서 노래한시 高亭屹立壓江頭(고정흘립압강두) 우뚝 솟은 정자는 강 머리를 누르고 錦水和烟檻外流(금수화연함외류) 안개 낀 금수는 헌함 밖에 흐른다. 懿蹟煊煊靑史赫(의적훤훤청사혁) 빛나는 큰 공적 청사에 빛나는데 行人仰慕步躇躊(행인앙모보저주) 발걸음 멈춘 길손 우러러 흠모하네


상품 정보 고시

품명 상품페이지 참고
모델명 상품페이지 참고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상품페이지 참고
제조국 또는 원산지 상품페이지 참고
제조자 상품페이지 참고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상품페이지 참고

사용후기

등록된 사용후기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

등록된 상품문의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배송정보

현재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동일 주문건에 대해서 수량 상관없이 3,000원 이며 주문금액이 100,000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 됩니다.

배송지역이 도서 산간지역이거나 일반택배 부적합 상품의 경우 추가 배송비가 청구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로젠택배를 이용 합니다.


주문 시 배송비 문제가 발생하면 옛날물건 담당자에게 전화 주십시오.

교환/반품

입력된 교환/반품 정보가 없습니다.

회사명 옛날물건 주소 경남 밀양시 중앙로 80-6 (가곡동)
사업자 등록번호 615-03-17906 대표 김동영 전화 010-3845-4358 팩스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03-14호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김동영
Copyright © 2001-2013 옛날물건. All Rights Reserved.

전화문의

010-3845-4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