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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족보(固城李氏族譜) 單冊(초대형)1책(약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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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200년이상된 대형장지바닥에 두께가 2.5센치가넘는 고성이씨족보(固城李氏族譜) 單冊(초대형)1 상태아주좋고 파장없음 크기:48.5*29.5센치 **책제목은 고성이씨초단(固城李氏草單)이며 경상도지역에 근거를 두고있는 족보대형 필사본임 *고성은 경상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6가야중 소가야의 도읍이었는데 신라시대에 고자군으로 불리우다가 고려때 철성부로 개칭되었으며, 조선때 고성현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고성군이 되었다. [이씨추원록(李氏追遠錄)]에 의하면 고성이씨(固城李氏)는 한나라 문제때 사람인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는 고려때 밀직부사를 역임하고, 1033년 거란이 침입했을때 공을 세워 문종때 호부상서에 올라 철령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고성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맥으로는 시조의 7세손으로 고려 충렬왕때 판밀직사사를 지낸 존비(尊庇)와 그의 아들 우(瑀)가 유명했다. 우(瑀)는 벼슬이 병부의 판사와 경령전의 서장관사에 이르렀으며 나라에 공을세워 철성부원군에 봉해져서 크게 명성을 떨쳤었고, 그의 아들 암과 교(嶠)가 뛰어났다. 암은 충정왕때 우정승을 지냈고 글씨에 뛰어나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리웠으며 동생 교(嶠)는 공민왕때 형부상서)를 거쳐 어사대부에 올랐다. 조선조에서는 행촌 암의 아들 4형제 중 장남 인(寅)은 고성군에 봉해졌으며,차남 숭(崇)은 공민왕때 궁술로 무명을 떨치고 조선이 개국되자 태조때 검교시중에 올라,대제학을 지낸후 서예로 필명을 떨쳤던 아우 강(岡)과 함께 가세를 일으켰다. 강(岡)의 아들 원(原)은 태종때 좌명공신으로 철성부원군에 봉해졌고, 이어 병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원은 슬하에 대(臺),곡(谷),질,비,장(場),증(增),지 등 일곱아들을 두었는데, 이들이 모두 크게 현달하여 가문에 중추적인 인맥을 형성했다. 좌의정 원(原)의 증손 주(胄)는 정언을 지내고 시문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갑자사화때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피살되었고, 그의 아우 여는 임금이나 조정에서 크게 촉망받다가 안질로 29세에 요절했다. 그외 명종때 병조 판서를 지내고 판돈령부사를 지낸 명규(名珪)가시어(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고 서예에 뛰어났으며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한말에 와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한자강회(大韓子强會)를 조직하여 민중계몽과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기(沂)가 을사오적신(이완용 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의 암살을 결행하다가 실패하고 진도로 유배되었으며, 독립운동가로 이름났던 덕수(德秀)는 임시정부가 설립되자 평북 독판(平北督辦)에 임명되어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상의(象義), 상룡(相龍)과 함께 의절의 전통 가문인 고성이씨를 더욱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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