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정보
상품 기본설명
광주안씨가보(廣州安氏家譜)1책완질 필사(조선시대)
상품 상세설명
조선시대 광주안씨가보(廣州安氏家譜)1책완질 필사 상태아주좋으며 파장없음 크기:30.2*20센치 **광주군 대장군(廣州君 大將軍) 안헌사(安憲思)부터 기록되어있음 **광주안씨 *안씨(安氏)의 도시조(都始祖) 안원(安瑗)은 본래 당나라 종실인 이씨(李氏)였는데, 807년에 신라로 건너와 개성 송악산 아래에 정착해 살면서 아들 지춘(枝春), 엽춘(葉春), 화춘(花春) 3형제를 두었다. 그후 경문왕때 와서 갑신란이 일어나자 이들 3형제가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나라에서는 편안안(安) 자로 성을 내리게 되었으며, 맏아들 지춘이 방준(邦俊)으로 개명하고 죽산군에 봉해져서 죽산안씨의 시조가 되었고, 둘째 엽춘은 방걸(邦傑)로 개명하고 광주군에 봉해져서 광주안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셋째 화춘은 방협[邦俠]으로 개명하여 죽성군에봉해졌다. 시조 방걸(邦傑)의 막내 완경(完慶)은 우간의대부와 병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문종때 대사헌을 거쳐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계유정난때 안평대군과 단종복위를 약속했다가 양산에 유배되어 적소에서 사사(賜死)당했다. 용안 현감 극변(克辨)의 아들 윤손(潤孫)은 예문관 검열과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하고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후 회령 판관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연산군때 대사헌과 함경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중종반정후 강원 감사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내고 형조참판에 올랐다. 사헌부 감찰 종생(從生)의 아들 5형제중 장남 팽로(彭老)는 안동판관을 역임했고, 4남 팽조(彭祖)는 승사랑에 올랐으며, 막내 팽명(彭命)은 형조정랑과 장령을 지냈고 사간을거쳐 예빈시 부정을 역임했다. 연산군때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던 윤덕(潤德)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김제로 유배되었다가 후에 한성부 판윤과 형조판서를 지내고 1526년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좌참찬과 신천군수를 지낸 형 윤복(潤福)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주안씨(廣州安氏)는 남한에 총 12,486가구, 53,49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정보 고시
품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모델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국 또는 원산지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자 |
상품페이지 참고 |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
상품페이지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