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정보
상품 기본설명
영가지(永嘉誌)권지5~8終 2책(1899년(己亥年))
상품 상세설명
영가지(永嘉誌)권지5~8終 2책낙질 완질은 8권4책임 상태아주좋으며 파장없음 크기:30.5*20.8센치 1899년(己亥年) 발행본임 **永嘉誌 古 915.154-G989y 權紀著, 鄭逑 편, 1608년(선조 41) 완성. 1899년 간행. 8권 4책. 목판본. 31.4 x 21.3 Cm. 17세기초에 편찬된 경상도 안동부의 읍지. 영가는 안동의 옛 이름이다. 1602년(선조 35)에 柳成龍(1542∼1607)의 문인 權紀가 유성룡의 명을 받아 權行可와 함께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유성룡이 죽자 작업이 일시 중단되었다. 이후에 鄭逑(1543∼1620)가 안 동부사로 부임하자 權紀·柳友潛·權克明·李義遵 등 10인을 소집하여 1608년(선조 41 )에 편찬을 완성하였으나 간행을 보지 못하다가, 1899년 權相鶴·權相宅 등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권두에는 1608년에 쓴 권기의 서문이 있다. 이어 本部圖·臨河縣圖·吉安 縣圖·甘泉縣圖·柰城縣圖·一直縣圖·豊山縣圖·皆丹部曲圖·春陽縣圖·小川部曲圖 · 才山縣圖 등 部內 各縣과 部曲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各縣의 지도에는 村·里·山川 ·寺刹·書堂·史庫 등이 표시되어 있다. 각 권의 목차를 보면 당시 안동과 인근 지역 의 행정체계와 사회경제상황·문화·풍속 등에 관한 내용들을 망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1}에 沿革·邑號·各縣沿革·疆域·鎭管·界首官所屬·官員·形勝·風俗·各 里·戶口, {권2}에 山川·土品·土産, {권3}에 館宇·樓亭·城郭, {권4}에 鄕校·壇廟 , {권5}에 鄕射堂·軍器·驛院·匠店·烽燧·道路·堤堰·灌漑·津渡·橋梁·池塘·林 藪·場市, {권6}에 古跡·佛宇·古塔·明宦·任官, {권7}에 姓氏·人物·流寓·寓居· 善行·閨行·見行·孝子·烈婦, {권8}에 塚墓·叢談 등이 수록되었다. 이 중 [叢談]은 謄寫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다. 주요한 내용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沿革]에는 안동 이 ≪삼국사기≫에 古陀耶로 기록된 이래 여러 사건에 따라 읍호가 바뀐 사실을 기록 하고 있다. [邑號]에는 古陀耶·古昌·昌寧·安東·永嘉·吉州·福州 등 안동을 지칭 하던 읍호 14개가 수록되어 있다. [疆域]에는 안동 지역이 東西 150里, 남북 250里임 을 기록하고 있으며, [풍속]에는 \'勤儉을 숭상하고 農桑에 힘쓰며, 忠臣烈女가 南方에 서 최고로 배출되는 고장\'임을 자랑하였다. [戶口]에는 田結과 軍額·奴婢가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안동의 호수는 5,587戶였으며, 밭 8,906結, 논 3,496結이었다. [場市]에 는 府內場이 客舍앞에서 2일과 7일에 開市한다고 되어 있는데, 안동에서는 1970년대까 지 2일과 7일에 五日場이 열려 이 전통을 계승하였다. [古跡]에는 映湖金額·恭愍王手 筆敎旨와 石佛·寺刹·山城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으며, [古塔]에는 현재 국보로 지정된 法興寺 塔에 대한 설명이 주목된다. [任官]에는 역대 牧使와 判官의 명단이 수 록되어 있으며, [人物]에는 權幸에서 柳成龍까지 안동 출신 인물의 행적을 수록하고 있다. 권말에는 1899년에 찬한 金道和와 柳道獻의 발문이 있는데, 안동이 학문과 문화 의 고장으로서 鄒魯之鄕으로 칭해지고 선비들은 程朱之學을 숭상한다는 자부심이 나타 나 있다. <奎 15562>본은 이 책과 동일한 판본이다. 이외에 ≪永嘉誌≫는 국립중앙도 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에도 소장되어 있다. 조선중기에 편찬된 읍지 중에서 비교적 풍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사회사연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신병주)
상품 정보 고시
품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모델명 |
상품페이지 참고 |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국 또는 원산지 |
상품페이지 참고 |
제조자 |
상품페이지 참고 |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
상품페이지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