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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1
**被傳者: 李潑
序: 歲戊辰(1928)...河謙鎭
跋: 己巳(1929)...李炳夏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부제학,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발(李潑)[1544~1589]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을 지낸 이달선(李達善), 할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지낸 이공인(李公仁), 아버지는 예조참판(禮曹參判)과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낸 이중호(李仲虎)이고, 어머니는 윤구(尹衢)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이다.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이발은 1568(선조 1)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573년(선조 6) 알성시(謁聖試)에 갑과(甲科)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곧바로 예조좌랑(禮曹佐郎)에 임명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부교리(副校理)와 헌납(獻納)을 거쳐 1582년(선조 15)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었다. 이발은 1583년에 대사간(大司諫), 1587년에는 대사성(大司成)에 오르는 등 순탄한 관직 생활을 이어갔으나, 1589년(선조 22)에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그해 12월에 장살(杖殺)되었다.
흔히 ‘정여립의 난’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정작 당사자인 정여립이 이미 죽고 난 뒤에 발생하였다. 1589년 10월 1일에 당시 황해도 관찰사 한준(韓準) 등이 “전 수찬(修撰) 정여립이 모반을 한다.”라는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장계가 도착한 뒤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전라도에 파견된 금부도사가 정여립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올렸고, 이어서 반역에 공모하였다는 자들을 체포하는 와중에 정여립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이후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鄭玉男)이 체포되었고, 선조가 친히 국문하여 반역의 실상이 드러났다. 선조는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명령하였고, 정여립이 속한 동인 계열 인사였던 이발 역시 이 사건에 개입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체포되었다. 이발이 장살된 후 이발의 어머니와 8살 아들도 극형을 받았다.
이발은 김근공(金謹恭)과 민순(閔純)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발의 묘소는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산70번지에 있다.
이발은 1694년(숙종 20)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에 있는 수암서원(秀巖書院)은 이발을 비롯하여 필문 이선제, 이조원, 이중호, 이길 등 5현을 모신 사당이다. 1624년(인조 2)에 세워졌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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