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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후(李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재(善載), 호는 낭산(朗山)이며, 1870년(고종 7) 10월 26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천곡(泉谷)에서 태어나, 1934년 1월 11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증조는 이정보(李廷輔)이며, 조부는 이인하(李仁夏)이니 현재의 영천시 청통면 후평(後坪)에 처음 옮겨 살았다. 아버지는 이창우(李昌禹)이며, 어머니는 청도 김씨(淸道金氏)로 김지령(金志齡)의 딸이다. 부인은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이두흠(李斗欽)의 딸이며, 슬하에 1남 5녀를 두니 아들은 이호대(李好大), 사위는 소욱(蘇昱)·최인환(崔寅煥)·서팔수(徐八洙)·정광호(丁光鎬)·이무순(李武淳)이다.
이후는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5세에 이미 글을 지을 줄 알았기에 아버지께서 비범함을 아껴 산사의 고요한 곳에서 유학을 전공하게 하였으니 여러 경전을 두루 섭렵하였다.
28세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문하에서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으며, 양친을 섬김에 살아계실 때 정성으로 봉양하고, 상중에는 예를 극진히 하니 범인이 따를 수 없었다.
한말 나라가 망하고 도학이 추락하며 끊어지는 걱정들을 논저(論著)로서 발(發)하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라는 강경한 표현들은 한결같이 고의(古義)에 근본하였다. 천곡(泉谷)의 원재(源齋)에서 학도(學徒)를 받았으나 궁색하고 비좁음을 걱정하여 별도 북산정사(北山精舍)를 세워 강도(講道)하는 곳으로 삼아 평생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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