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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묵(鄭昌默)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창묵은 1884년 5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광대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 4월경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공일()·정휴규() 등과 함께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 조직인 신인동맹()을 조직하고 동지 규합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정창묵은 신인동맹 설립 초기부터 활동하며 동지들을 규합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12월경 신인동맹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검거되어, 1943년 10월 6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정지순(鄭之純) 학자

이상호(李祥鎬) 학자

**퇴계의 13대손으로 태어난 양전(陽田)은 독실하게 학업에 전념하여 유도(儒道)로 내면을 확충한 선비였다. 퇴계의 학문에 뿌리를 둔 가학(家學)의 역사적 전통 위에 양전의 학문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그는 유림(儒林)의 존경을 받았다. 퇴계의 문집을 보면 일평생 가장 중요시한 것이 바로 위기지학(爲己之學)임을 알 수 있는데, 위기지학을 강조한 퇴계의 가르침을 토대로 양전은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은 선비였다. 양전은 퇴계가 남긴 덕행(德行)과 가르침으로 수기(修己)에 전념하였으며, 퇴계의 위기지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강론하고 실천하였다. 특히 양전 에 의해 간행된 _동학(東學)_은 이러한 퇴계의 가르침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양전은 가학(家學)의 전통인 퇴계학을 계승하고 이를 _동학_에 구현함으로써 퇴계의 교육사상을 실천하는 데 기여하였다.『동학』은 양전의 가문에서 중시한 범절(凡節)을 가르침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 양전의 가문이 실천한 범절의 핵심은 선비 가문의 기풍(氣風)임을 알 수 있다. 양 전은 퇴계의 학문정신과 그 실천적 삶을 본보기로 삼으며 학퇴계(學退溪) 정신을 구현한 선비이다. 양전시는 체험에서 우러난 깊은 사유를 형상화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퇴계의 학문정신과 실천적 삶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견지하며 살았던 양전의 시에서는 퇴계시와 유사한 시적 정서를 보이는 경우가 발견된다. 독서하는 것이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음을 읊은 시가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유가(儒家)에게 학문의 목적은 인욕(人欲)을 버리고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도학적(道學的) 시세계는 사물을 관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퇴계시에 자주 발견되고 있는데, 양전의 시는 이러한 퇴계시의 특성과 동궤의 것이다.

이수겸(李壽謙) 학자

최종응(崔鍾應) 의병,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자는 성문(), 호는 금전(). 최근응()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흥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남교()이다.

최종응()[1871~1944]은 1871년 8월 21일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72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상북도 선정사(使)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치게 된다. 1920년 9월 고일정()·윤철()·이태훈() 등과 경상도·충청도·전라도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친일 자산가 및 부호들의 자산 명부를 작성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 오계리조석환, 영천군 청경면 상리동손호창에게 각 군자금 1,000원을 제공하라고 요구하였다. 두 명으로부터 받은 2,000원 중 800원을 고일정에게 주었다. 1921년 2월 경상북도 칠곡군에 사는 윤병돈() 등을 비롯한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부호 십여 명에게 각 2,000원 내지 5,000원을 요구하는 군자금 납입 명령서()를 송부하였다. 대구부 정차장 앞에서 윤병돈에게 300원을 받아 이태훈()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2월경 이러한 일련의 군자금 모집 활동으로 인해 최종응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2년 3월 30일 공갈 및 제령 제7호 위반으로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최종응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호직(金浩直) 의병,독립운동가

**1874년(고종 11) 7월 26일∼1954년 2월 15일. 일제 강점기 의병. 자는 맹집(孟集)이고, 호는 우강(雨岡)이다. 본관은 안동(安東[舊])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의성(義城) 사촌(沙村: 현 점곡면(點谷面))이다.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후손으로, 부친은 김세종(金世鍾)이다. 생부 김회종(金會鍾)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 김호집(金浩集)이 있다.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경전(經典) 공부에 힘썼다.
1894년(고종 31) 식년시 진사 3등 696위로 합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고종이 파천하여 러시아공사관에 머무르게 되자, 의병을 일으킨 백부 김상종(金象鍾)을 따라다니면서 구성산전투(九城山戰鬪)를 지휘하는 등 여러 곳에서 공훈을 세웠다. 이후 평양‧원산‧개성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정세를 감지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를 당한 후부터는 은거하면서 나라 잃은 백성이라며 집안의 대소사를 간략하게 치루었다.
1996년 정부로부터 공훈이 인정되어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이수목(李壽穆) 칠곡출신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0년 8월 2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매원동[현 매원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에 조선 국권 회복을 위한 자금 모집과 선전 활동을 하였으며, 1944년에는 여운형() 등의 조선건국동맹에서 재무 담당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2월 28일 정월 대보름 시회()로 위장하여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하였다. 당시 이수목은 단원으로서 단군대황조()에게 제사를 드리고 국권회복을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한 후, 조직의 자금 모집과 선전 활동을 담당하였다. 그 후 1932년부터 장남 이두석()의 항일 활동을 도왔으며 1944년 8월 10일에 여운형()·조동호() 등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할 때 중앙의 재무 담당으로 자금조달 관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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