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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曹溪宗)의 승려로 혜암(慧庵)의 법맥을 이었다. 불교정화운동을 추진하였으며 불교 정화·통합에 힘썼다. 대한불교총연합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 전주. 속성 이(李). 속명 만업(萬業). 경상북도 예천 출생. 어려서 한학(漢學)을 공부하다가 보통학교에 편입학, 1919년에 졸업하였다. 인생문제로 고민하다가, 1931년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에서 혜암(慧庵)을 만나 발심(發心),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1932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가서 중원(重遠) 밑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끝내고, 1934년 금강산에 들어가 만공(滿空)의 지도를 받았고, 1939년 도봉산 망월사(望月寺)로 옮겨 선학(禪學)에 힘쓴 뒤, 1940년 강화도 보문사(普門寺)에서 국가를 위한 백일기도를 하고, 1941년 계룡산 갑사(甲寺)에서, 또 1942년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서, 3년을 이어 백일구국기도를 하고 백담사(百潭寺)에서 안거(安居)하였다.1945년 수덕사(修德寺)에서 광복을 맞았는데, 거기서 혜암의 법맥을 이어 받고 선학원(禪學院)으로 들어가 3년 동안 휴정(休靜)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한글로 역간(譯刊)하였다. 1954년 전국비구승대회를 주관하는 등 불교정화운동을 추진하여 화계사 주지가 되어, 이듬해 대처승(帶妻僧)들의 본거지인 조계사를 점거, 주지가 되어 비구승들의 불교전통승계에 발판을 놓았다. 1958년 총무원 총무부장을 비롯, 감찰원장과 1972년 대한불교총연합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70세가 넘도록 108배 새벽 참회예불을 쉬지 않았고, 불교정화 ·통합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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