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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근사록(五子近思錄)권지6~14終 2책 藝閣印書體字本(17세기 예각인서체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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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간행된 汪佑가 편찬한 오자근사록(五子近思錄)권지6~14終 2책(철활자본) ** 藝閣印書體字本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28*17.3센치 내향흑어미 보15-6-1 **藝閣(校書館)印書體字 : 경종초기(1723년 이전)에 鑄造한 철활자. **교서관 인서체자는 명나라 중기경 부터 많이 쓰여 오던 명체(明體)를 모각(模刻)하여 교서관에서 만든 활자로, 일명 '당자(唐字)'라고도 부른다. 명나라 인서체가 최초로 도입된 본 활자의 가장 큰 특징은 종래의 모필체(毛筆體)와는 달리 서구의 프린트식 글자형을 연상시킬 만한 새로운 서체의 면모를 보이고, 재질 또한 종래의 동(銅)과는 달리 철(무쇠)로써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재질이 무쇠인 까닭에 활자 획이 좀 굵고 글자 모양이 가지런하지 못하며, 만든 솜씨 또한 약간 거친 편이다.본 활자는 주조된 시기와 글자체의 형태에 따라 두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 활자는 숙종 초(1684년 이전)에, 두 번째 활자는 경종 초(1723년 이전)에 주조된 것이다. 따라서, 속종 때 만든 것을 '전기 교서관 인서체자' 또는 '전기 교서관 인서체 철활자'라 하고, 경종 때 만든 것을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 또는 '후기 교서관 인서체 철활자'라고 한다. 첫 번째 활자는 세로획이 굵고 가로획은 가늘어서 그 차이가 현저하며 인본도 다소 협소하고 조밀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두 번째 주조된 활자는 글자체가 정연하고 종횡의 굵은 차이도 심하지 않아 첫 번째 활자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재질이 역시 무쇠인 까닭에 섬세하지 못하고 딱딱한 감을 느끼게 한다. 두 활자가 서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명나라로부터 수입해 온 인본을 글자 본으로 하여 주조하였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첫 번째 활자의 인본은 명나라 중기 경에, 두 번째 활자의 인본은 명나라 후기 경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교서관 인서체자의 인본과 명나라에서 간행된 인본을 비교하면 글자체가 서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일치되고 있어, 명나라 인본들이 교서관 인서체자의 글자 본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본 활자들이 어느 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기록이 없다. 다만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인본의 간행 연대 등으로 미루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첫 번째 인서체자는 삼주(三鑄) 갑인자의 글자체가 중·대형이어서 인쇄하는데 불편을 느끼게 되자 중·소형으로 된 인서체자를 교서관에서 주조하게 되었으며, 두 번째 활자는 첫 번째 활자의 미비 점을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30여 년간만 사용된 첫 번째 인서체자와는 달리 두 번째 인서체자는 영·정조 대를 거쳐 철종 대에 이르기까지 13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사용되었으며, 갑오경장 이듬해(1895)부터 학부가 '학부 인서체자'를 목활자로 만들어 교과서를 찍을 때 섞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인서체의 초기 인본은 보충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 훌륭하지만 후기로 올수록 보충자가 많이 섞이고 첫 번째 인서체자가 혼용된 것도 있어 통일된 글자체를 보이지 못한 인본들이 많다. 그럼에도 본 활자는 중간 자와 작은 자로 되어 있어 각종 서적의 간행에 편리했던 관계로 그 인본들이 다수 전해오고 있는데, 관부(官府)의 서적뿐만 아니라 사가(私家)의 문집 인쇄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본 활자가 교서관 소유의 관부 활자이면서도 사가 문집의 인쇄에도 널리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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