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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목판본 지봉선생집(芝峰先生集) 권16~18 1책(16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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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목판본 지봉선생집(芝峰先生集) 권16~18 1책 상태보통이며 낙장없음 크기:27.5*19센치 보20-3-2 **이수광 (李光 ; 1563~1628) 조선 중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이다. 그리고 호는 지봉(芝峰)으로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아버지는 병조판서 희검(希儉), 어머니는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와 병조의 좌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였으나 용인(龍仁)에서 패하였다. 그후 의주로 가 북도선유어사(北道宣諭御史)가 되어 함경도지방에서 큰 공을 세웠다. 지평·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주청사(奏請使)로 연경(燕京)에 내왕하였는데 당시 명(明)나라에 와 있던 이탈리아 신부(神父) 마테오리치의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2권과 《교우론(敎友論)》 1권 및 중국인 유변(劉폣) 등이 지은 《속이담(續耳譚》 6권을가지고 돌아와 한국에 최초로 서학(西學)을 도입하였고,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지어 서양의 사정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남(安南:지금의 베트남)의 사신과 교유했다. 1601년에 홍문관부제학으로 《고경주역 (古經周易)》을 교정했고, 이듬해 《주역언해 周易言解》를 교정했으며, 1603년에 《사기》를 교정했다. 1605년에 안변부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사직하고 돌아와 1607년 홍주목사로 부임했다. 1609년(광해군 1) 중앙으로 와서 도승지·예조참판·대사헌·대사간 등을 지냈다. 1611년 왕세자의 관복(冠服)을 청하는 사절의 일원으로 3번째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유구(琉球)와 섬라(暹羅:지금의 타이)의 사신을 만나 그들의 풍속을 기록했다.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이 대옥(大獄)을 일으켜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재등용되어 도승지·대사간(大司諫)이 되었고,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인조를 공주(公州)로 모셨고 1627년 정묘호란에는 왕을 호송하여 강화(江華)로 갔다. 1628년에 이조판서를 지내고 사후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이수광은 민본주의 정치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임진왜란의 참화가 군대를 미리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만언(萬言)에 이르는 장문의 시무책인 《조진무실차자》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① 권학지실(勸學之實), ② 정심지실(正心之實), ③ 경천지실(敬天之實), ④ 휼민지실(恤民之實), ⑤ 납간쟁지실(納諫諍之實), ⑥ 진기강지실(振紀綱之實), ⑦ 임대신지실(任大臣之實), ⑧ 양현재지실(養賢才之實), ⑨ 소붕당지실(消朋黨之實), ⑩ 칙융비지실(飭戎備之實), ⑪ 후풍속지실(厚風俗之實), ⑫ 명법제지실(明法制之實) 등 12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허(虛)가 아닌 실(實)을 강조함으로써 임진왜란 후 흔들리던 국정과 사회 전반에 걸친 시정의 폐해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보이는 그의 치세관(治世觀)은 덕치주의(德治主義)의 구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민(民)에 대해 진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주자학적 유교 이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수광의 학문은 일종의 백과전서인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는 일본·안남·유구·섬라 등 동양 각국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유럽에 대한 기술도 실려 있다. 즉 서양에 대한 새로운 지식, 이를테면 영국의 위치·기상·생활양식, 군함의 구조와 무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마테오 리치가 지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소개하고 천주교 교리와 교황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천주교의 전래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 책은 천문에 대한 것에서 인물·초목·금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을 분류·수록하고 있다. 이 책의 체제와 내용, 그것이 담고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사상은 그후 실학자들의 저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학문은 양명학에서도 많은 시사를 받아 저서 곳곳에 양명학을 소개하고 치양지(致良知)와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의 학계와 정계를 진가(眞假)의 대립으로 파악하는 논리는 그의 학문이 양명학과 연관되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의 학문경향의 특징은 유교적 정통성을 발판으로 하면서도 주자학의 기본문제에 뛰어들기보다는 구체적인 무실(懋實)을 강조하는 실학적 정신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저서에 《지봉집》 《채신잡록(採薪雜錄)》 등이 있다. 수원 청수서원(淸水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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