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19*30센치
보내1층16상1
완질은 4권2책임
**조선 후기 하동 및 주변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 초명은 한몽인(韓夢寅)이다. 고조할아버지는 한성판관을 지낸 한사무(韓士武)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돈암(遯庵) 한승리(韓承利)이며, 할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한여철(韓汝哲)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여한 한계(韓誡)이며, 어머니는 현감 허주(許鑄)의 딸 양천 허씨(陽川許氏)이다. 부인은 참봉 장익기(張益祺)의 딸 창녕 장씨(昌寧張氏)이며, 그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한몽삼(韓夢參)은 20세 되던 1608년(선조 41) 황암(篁巖)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24세 때 삼가(三嘉)에서 열린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이후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경의(敬義) 사상과 벼슬에 대한 출처(出處)를 중시하였다. 30세에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정구는 한몽삼의 아버지 한계가 종유했던 인물로, 한계는 정구를 스승의 예로 대하고 정구는 한계를 친구처럼 대했다고 한다. 38세에 황암의 손자인 농은(農隱) 박도원(朴道元),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 등과 함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 출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