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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1*32센치
보내1층14상1
**跋: 柳止鎬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고(南皐)관련항목 보기[1807~1879]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40년(헌종 6)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시암집(時庵集)』이 전한다.
남고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중안(仲安)·중원(仲元), 호는 시암(時庵)·둔암(遯庵)이다. 남경훈(南慶薰)의 8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생원(生員) 남경복(南景復), 할아버지는 남두양(南斗陽), 아버지는 남유로(南有魯), 어머니는 백원옥(白元玉)의 딸 대흥백씨(大興白氏), 부인은 김관진(金寬進)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 심헌지(沈憲之)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 이서린(李瑞麟)의 딸 안성이씨(安城李氏)이다.
1807년(순조 7)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원고리[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집안 어른인 남서양(南舒陽)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성장해서는 류치명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남상교(南尙敎)·이종상(李鍾祥)·류치호(柳致鎬)·김대진(金岱鎭) 등의 인사들과 교유하였다. 15세 때 「원조십오잠(元朝十五箴)」을 짓고 경계로 삼았다. 1832년 『홍범연의(洪範衍義)』 수교에 참여했으며, 이듬해 향리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거행하였다. 1840년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와 1843년 대둔정사(大遯精舍)[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소재]를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문집으로 15권 8책의 『시암집』이 전한다. 권3 소(疏)에 수록된 「청물훼서원소(請勿毁書院疏)」는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반대하면서 올린 상소이다. 잡저(雜著)의 「곤면록(困勉錄)」은 평소 생각하던 시국관·사회관·성리설·예설·역사관 등을 정리한 것이다. 특히, 삼정(三政)과 과거 제도의 폐단을 지적하였고, 노비제와 서얼 제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보이고 있다. 「축묘설(畜猫說)」, 「고죽설(枯竹說)」, 「양죽설(養竹說)」은 고양이와 쥐, 대나무와 칡덩굴에 빗대어 군자와 소인을 설명한 우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