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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 전주이씨 이민구(李敏求) 동주선생문집(東州先生文集) 권7,8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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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조선시대
원산지 한국
판매가격 15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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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판본 전주이씨 이민구(李敏求) 동주선생문집(東州先生文集) 권7,8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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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주옹(, 동주는 이민구의 호)은 자호()를 관해도인()이라 하는데, 만력() 기축년(, 1589년 선조 22년) 정월 14일에 태어났다. 나서 6세에 옆 사람이 읽는 글 수천 자를 착오 없이 외웠고, 7세에는 글 짓는 법을 해득하여 시()와 부()를 지었다. 15세에 발해()를 했고, 22세가 되던 기유년(, 1609년 광해군 원년)에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4년 지나 임자년(, 1612년 광해군 4년)에는 세 번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비로소 예조와 병조의 낭관()이 되었다가 수찬()으로 옮겼다.

    이미 10년을 거들먹거리다가 임술년(, 1622년 광해군 14년)에 일본에 선위사(使)로 다녀왔다. 계해년(, 1623년 인조 원년) 개옥(, 반정()을 이름)에 이르러서는 교리()ㆍ지평()ㆍ응교()에 제수되어 맨 먼저 사가 독서()를 받았으며 유장()에 천거되어 곧바로 도원수()의 막료()로 달려갔다. 갑자년(, 1624년 인조 2년)에는 서열을 넘어 영남()에 안찰사(使)로 나갔고, 병인년(, 1626년 인조 4년)에는 은대(, 승정원())에 있으면서 직위를 넘어 말을 한 일로 좌천되어 임천 군수()에 제수되었다. 당시에 청나라 오랑캐의 핍박으로 창의사(使)에 겸배()되었다.
    중앙으로 들어와서 부제학()에 제수된 것이 다섯 번, 대사성()에 제수된 것이 네 번, 이조 참의()에 제수된 것이 세 번, 대사간()과 승지에 제수된 것이 일곱 번인데, 세 번 도승지()가 되었으며, 예조와 병조의 참판()을 각각 한 번씩 역임하였고 이조 참판()과 대사헌()에 각각 세 번 임명되어 동지경연() 성균관사()ㆍ세자우빈객()ㆍ비변사 제조(調)를 겸하였으니, 이것이 역임한 관직의 이력이다.
    최후로 병자년(, 1636년 인조 14년)에는 관동 절도사(使)를 마치고, 황해도()로 나아가 감군()하였다. 그해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의 기병()이 국경 안으로 돌격해 들어와 3일만에 도성에 가까이 오니 임금이 졸지에 일어나 강도()로 거둥하려 하였다. 옹()이 조정의 명을 받고 먼저 도로와 교량과 배를 점검하고 살폈다. 즉일로 적의 군사에 도로가 막혀 대가()가 강도() 길을 거두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강도와 멀리 막혀져서 옹은 이미 수어()의 직책을 받지 못하였고, 또 수륙 방비를 수신()에게 전임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명을 받은 터라서 오직 밤낮으로 동쪽 남한산성만 바라보고 목메어 통곡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강도가 갑자기 적에게 함몰되자 옹이 주차()에 있었으므로 다행이 빠져 나와 죽지 않을 수 있었고 또 불행히 죽지 못하고 조정으로 돌아와서 그 죄책을 받아 영변부()로 귀양 가게 되었다. 죄를 얻은 이래로 구속되기도 하고 이름이 사판()에서 깎아지기도 하고 유배되어 내쳐지기도 하고 안치되고 위리()되기도 하여 한번 그물에 걸리자 오형()의 형률로 더함이 극도에 이르러 남은 형벌이 없었는데, 오직 곁에서 보고만 있는 자는 비록 측은하다고 부르지 않았으나 어진 사람과 당여()로서 친하여 평일에 서로 사랑하며 돌보던 자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불쌍히 여기고 애처로이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돌아보건대 옹이 난리의 변환하는 기회를 만나서 골육은 모두 칼날과 화살에 사라지고 자신은 또 먼 변방에 의탁하여 쓸쓸하게 음()을 보고 있으니 결코 양()을 회복할 기회가 없을 것을 알 수가 있다. 세상은 한창 병화의 열기가 타는 듯하여 팔도()가 마구 어지러워져서 삵쾡이와 호랑이들만 들끓고 생민()은 섬멸되었으니, 어찌 보존할 수 없는 목숨을 가지고 보탬 없는 슬픈 생각을 하겠는가?
    이렇게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위안하면서 순리대로 처하고 분수에 맡기어 아침저녁으로 죽이나 밥을 먹으면서 주재()의 하는 대로 따를 뿐이다. 옹은 소싯적부터 저술을 좋아해서 흰머리에도 그 일을 고치지 않아 찬술하여 기록한 것이 총 4천여 편이 되었으나 병화에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늙어서 잘 잊어버리고 생각이 또 해어진 비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느려서 살펴 기록하지 못한다. 우선 세상에 전하는 것과 초본에 유락()된 것 중에 남아 있는 것을 주워 모아 그 대개를 기록한 초미()의 기재()이니, 참으로 말할 만한 것이 못된다.
    임술년(, 1622년 광해군 14년)부터 그 이후를 전고(稿)로 삼았는데, 목차로는 선위()ㆍ종군()ㆍ영남()ㆍ가림()ㆍ묘유()ㆍ동유()ㆍ관동()ㆍ관서(西) 등의 기록이 있다. 신유년(, 1621년 광해군 13년) 이전은 연도가 멀고 기록도 드물어서 대략 수집()해서 별고(稿)로 만들었고, 정축년(, 1637년 인조 15년) 이후는 시고(稿)를 만들되 별서()와 잡저()를 두고 전후를 합하여 문고(稿)를 만들었다.
    아! 사람의 태어남은 스스로 뒤에 태어나거나 먼저 태어나게 할 수 없어서 이렇게 간난()한 세상의 변고를 당하여 아침과 저녁의 기약을 점치지 못할 것이 위태롭게 염려되기 때문에 대충 태어나서 벼슬하고 겪은 일들을 서술하여 책 첫머리에 기록해서 어린 손자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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