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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上之十二年戊申(1788)...李光庭
序: 上之二十七年丁亥(1827)...朴綺壽
跋: 丁未(1787)...柳長源
跋: 己酉(1789)...趙述道, 金若鍊, 柳奎, 李違達, 柳鼎贊 내용:
卷上(冊1), 景濂先生逸稿/ 卓光茂.-- 卷下(冊1), 竹亭先生逸稿/ 卓愼
**탁광무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文臣)(?~?). 자(字)는 겸부(謙夫). 호(號)는 경렴정(景濂亭). 내서사인(內書舍人)을 거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이르렀으며, 문명(文名)이 높았다. 저서(著書)에 ≪경렴정집(景濂亭集)≫이 있다.
**탁신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동지경연사, 예문관제학, 의정부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효자.
탁신(卓愼)[1367~1426]의 본관은 광산, 자는 자기(子幾)·겸부(謙夫), 호는 죽정(竹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평장사 탁영(卓英), 할아버지는 직제학 탁문위(卓文位), 외할아버지는 김인검(金仁儉)이다. 아버지는 좌간의대부 탁광무(卓光茂)이며, 어머니는 판종부시사 박지연(朴之衍)의 딸이다. 부인은 정인진(鄭麟晉)의 딸로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탁신은 1416년(태종 16) 지신사(知申事)·경승부윤(敬承府尹)·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1418년(세종 즉위년) 예조참판(禮曹參判)·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공안부윤(恭安府尹)에 올랐다. 1419년(세종 1)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이 되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에 임명되었으며, 1421년(세종 3) 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자 탁신은 성균관사성으로 박사를 겸하였다. 1422년(세종 5) 의정부참찬(議政府參贊)에 올랐으며, 이 밖에도 태종의 배향공신 논의, 지지(地誌)·주군 연혁 편찬, 동전과 저화(楮貨) 교환 논의, 『고려사(高麗史)』 편수 과정 등에 참여하였다. 1426년(세종 8) 나이 60세로 사망하였다. 탁신은 경학(經學)에 밝고, 무예·음률에도 능하였다.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서 반드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위주로 하였다. 탁신은 당시의 광주 천곡리(泉谷里)에 정자를 지었는데 노송이 있어 탁송정(卓松亭)이라 불렀다.탁신의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426년(세종 8) 예조에서 치제(致祭)하였으며, 탁신에게 제사 지낼 때 인순부(仁順府)에서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서연관(書筵官)이 제문을 짓고, 내시원(內侍院)에서 향을 올리며, 서연관이 치전관(致奠官)이 되고, 익위사(翊衛司)의 관원이 축사(祝史)가 되도록 하였다.
탁신은 성주(星州)의 오계사(梧溪祠)[현재의 위치는 불분명]에 제향되었으며, 1699년(숙종 25) 탁순창(卓順昌)이 세운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안동세덕사(安東世德祠)에 아버지 탁광무와 함께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