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21.5*29.5센치
보내1층19상2
**序: 張錫龍
書後: 丁未(1907)...張升澤
**본관은 성주(星州). 자(字)는 자번(子藩), 호는 오월당(梧月堂). 증조할아버지는 훈도(訓導) 도태보(都台輔)이고, 할아버지는 참의를 지낸 도몽기(都夢麒)이다. 아버지는 도세옹(都世雍)이고, 어머니는 성산 여씨(星山呂氏) 주부(主簿) 여윤공(呂允恭)의 손녀이다. 또 다른 자료인 증손자 도명응(都命應)이 쓴 「실기(實記)」에 따르면, 어머니는 성산 여씨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의 손녀이자 여윤공(呂允恭)의 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인은 인동 장씨(仁同張氏) 증(贈) 이조판서 장현도(張顯道)의 손녀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도한국(都翰國)[1614~1682]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에게 수학하고 성주 출신 운암(雲巖) 김주(金輳)[1564~1636]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평생 관직을 멀리하고 학가재(學稼齋) 이주(李)[1599~1669], 서암(栖巖) 여효증(呂孝曾)[1604~1679], 남파(南坡) 장학(張澩)[1614~1669], 만회정(晩悔亭) 송세빈(宋世彬), 삼노당(三老堂) 정우(鄭堣)[1609~1687] 등과 교유하며 성리학에 침잠하였다. 효제(孝弟)를 준칙으로 경모재(敬慕齋)를 지어 종신토록 근검한 학문적 자세를 취하였다. 한가할 때면 서실을 지어 벽오(碧梧) 한 그루를 심고, 달이 비출 때마다 소요하며 자적하였다. 오월당이라는 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가장(家狀)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1842~1910]가 썼고, 묘갈명은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1825~1912]가 남겼다. 도한국은 『오월당문집(梧月堂文集)』 2권 1책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