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19.5*29센치
보외1층37-1-2
**조굉규(趙宏奎)[1857~192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태원(泰元), 호는 서고(西皋)이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성행(趙性行)이고, 어머니는 안병순(安秉淳)의 딸인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부인은 이민(李玟)의 딸인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新昌里)에서 태어났다. 1884년 동약(洞約) 9조를 발표하여 풍속을 쇄신하였다. 1908년 백이산 자락에 문창재(文昌齋)를 지어 강학하였다. 1919년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여 독립 선언문을 필사해 와서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서숙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于巨里)가재산(可在山) 간좌(艮坐)에 있다.
『서고 유고(西皋遺稿)』는 1930년의 화재로 대부분의 원고가 소실되자, 조굉규의 아들 조용수(趙鏞修)가 남은 원고를 여묘로 옮겨 보관하였다. 이후 1931년 정명계(正明契)를 조직하여 문창재(文昌齋)를 사들여 ‘서고 정사(西皋精舍)’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조용언(趙鏞彦)과 함께 찬술문을 요청하여 원고와 함께 편집하고, 1957년에 간행하였다. 『서고집(西皋集)』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