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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4상2
**手書刻序: 甲子(1804)孟秋上澣 晉陽鄭宗魯
識: 歲甲子(1804)五月日 八代孫通政大夫前行司諫院大司諫[金]翰東
**조선전기 병조좌랑, 옥당, 삼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로(師魯). 호는 칠봉(七峰).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된 김치정(金致精)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 이계공(李季恭)의 딸이다. 김취성(金就成)·이광(李光)·송희규(宋希奎)의 문인이다.
1531년(중종 26)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한 때 정언(正言)으로 간신(奸臣) 진복창(陳復昌)의 비위를 거슬렸다가 외직으로 쫓겨났다. 이어 간원(諫院), 헌부(憲府), 이조(吏曹)·병조좌랑(兵曹佐郞), 옥당(玉堂) 등을 역임했다.또, 사옹원정(司甕院正)에서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여러 상서가 있었다. 어사(御使)의 상신으로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타고난 성품이 순후(淳厚)하고 몸가짐을 삼갔으며 경(敬) 공부를 독실히 했다. 그는 항상 밤중에 일어나서 성현의 훈사(訓辭)를 외웠는데 늙도록 그 일을 중지하지 않았다.그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 김치정과 그의 아들 김우홍(金宇弘)·김우굉(金宇宏)·김우용(金宇容)·김우옹(金宇顒) 4형제가 효우(孝友)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천곡(川谷)의 향현사(鄕賢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칠봉일집(七峰逸集)』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