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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
**序: 上之十二年丙午(1846)...柳致明
跋: 上之十六年丁未(1847)...金相稷
**1515(중종 10)∼1564(명종1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사안(士安). 호는 이요당(二樂堂). 할아버지는 주문좌(周文佐)이고, 아버지는 주세구(周世龜)이며, 어머니는 창원최씨(昌原崔氏)로 좌의정 최윤덕(崔潤德)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서장관으로 중국 연경(燕京)에 가서 정도(正道)가 용납되지 못하는 현실을 분송(盆松)에 비유한 시를 지어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성균관 학정(學正)·전적(典籍)을 거쳐 낭관을 지냈고, 춘추관기주관·예안현감을 거쳐 강원도·평안도·충청도 등의 도사를 역임하였다.그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정에서 여러 차례 교리(敎理)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학문은 『효경(孝經)』·『가례(家禮)』를 표준으로 하였고, 타고난 성품과 거동이 훌륭하여 신선 같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