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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
**跋: 癸巳(1653)...申纘
**1653년(효종 4)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고홍진(高弘進)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제주목·대정현·정의현 읍지
이원진은 『성천지(成川誌)』를 편찬한 이상의(李尙毅)의 손자로, 『탐라지(耽羅志)』는 이원진이 제주목사[1651~1653]로 있을 때 고증할 문헌과 지도 등이 없어, 『여지승람』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에서 주요 내용을 간추리고 제영(題詠) 등을 수집하여 목판으로 간행한 사찬 읍지이다. 제주목은 36항목인데 비해 정의현은 27항목, 대정현은 25항목이다.
『탐라지』에 기록된 정의현과 대정현의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관원(官員)·성씨(姓氏)·풍속(風俗)·토산(土産)·산천(山川)·교량(橋梁)·성곽(城郭)·방호소(防護所)·수전소(水戰所)·봉수(烽燧)·궁실(宮室)·누정(樓亭)·창고(倉庫)·학교(學校)·향약(鄕約)·사묘(祠廟)·불우(佛宇)·장관(將官)·군병(軍兵)·노비(奴婢)·과원(果園)·목양(牧養)·공헌(貢獻)·고적(古跡)이고, 명환(名宦)·열녀(烈女)는 정의현조에만 있다. 그리고 두 현의 항목을 제주목과 비교해 보면 전결(田結)·공장(工匠)·의약(醫藥)·인물(人物)·효자(孝子)·제영(題詠) 등의 항목이 없다. 성씨·풍속·토산은 모두 제주목과 같다고 되어있는데, 대정현의 경우 매실(梅實)· 도라지[桔梗]·모과[木果]·속새[木賊]·부들[蒲黃]·굴[石花]·섭조개[淡菜]가 특유의 토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과원의 경우, 이원진이 목사 재임 시 새로 심은 나무들도 있는데, 제주목은 닥나무가, 대정현·정의현은 유자와 귤나무가 가장 많았다. 『탐라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후 변화된 상황들도 기록되어 있다. 존자암의 경우, 제주목에서 대정현 지경으로 옮겨간 사실이 적혀 있고, 고근산(孤根山)의 경우 정상에 있는 굴에 대한 유래가 좀 더 자세하다. 아울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었던 대정현의 색포(塞浦)·모슬포(毛瑟浦)·범질포(犯叱浦) 방호소가 지금은 폐지되었다라고 하여 당시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