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선택옵션 0 개, 추가옵션 0 개
상태좋음
크기:20.5*30.5센치
보외1층앵글55상3
**고려의 중신. 자는 주도(周道), 호는 기우자(騎牛子)ㆍ백암(白巖)ㆍ일가도(一可道). 본관은 황려(黃驪). 목사 천백(天白)의 아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 한림(翰林)ㆍ수찬(修撰)을 거쳐 우왕 때 전의부정(典醫副正)으로 탐라(耽羅 : 제주도)에 건너가서 성주(星主) 고신걸(高臣傑)의 아들 봉례(鳳禮)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이때부터 탐라는 고려에 귀순하게 되었다. 1389년 창왕 때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로 소를 올려 전제(田制)의 폐를 논하였고,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이ㆍ초(彝ㆍ初)의 옥으로 이색(李穡)과 같이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수재로 석방되었다. 경연참찬관(經筵參撰官)ㆍ예문관 대제학을 지내고 이조 판서 때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조영규(趙英珪)가 정몽주(鄭夢周)를 살해하자 소를 올려 영규를 만고의 흉인으로 몰았다. 고려가 망하자 예천동(醴泉洞)에 숨어 살았는데 태조가 교유(敎諭)의 글을 청탁하였으나 병을 이유로 쓰지 않았으며 조영규의 탄핵으로 평해군(平海郡)에 귀양가 그 곳에서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ㆍ야은(冶隱) 길재(吉再)와 왕래하며 지냈는데 태조ㆍ태종이 수차 조정에 나오도록 간청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문집이 몇 권 있으며, 아들 적(逖)도 벼슬에 오를 것을 거부하였으나 행은 자기와 입장이 다르므로 출사할 것을 권해 뒤에 벼슬이 예문관 직제학에 이르렀다.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현재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동일 주문건에 대해서 수량 상관없이 3,000원 이며 주문금액이 100,000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 됩니다.
배송지역이 도서 산간지역이거나 일반택배 부적합 상품의 경우 추가 배송비가 청구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로젠택배를 이용 합니다.
주문 시 배송비 문제가 발생하면 옛날물건 담당자에게 전화 주십시오.
입력된 교환/반품 정보가 없습니다.
회사명 옛날물건 주소 경남 밀양시 중앙로 80-6 (가곡동) 사업자 등록번호 615-03-17906 대표 김동영 전화 010-3845-4358 팩스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03-14호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김동영 Copyright © 2001-2013 옛날물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