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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3
**被傳者: 郭珣
序: 李好大
**조선전기 교리, 봉상시정,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곽성기(郭成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곽효원(郭孝元)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곽수녕(郭遂寧)이며,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김철단(金哲端)의 딸이다.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호조좌랑·진보현감(眞寶縣監)·기주관(記注官) 등을 거쳐, 1543년 서천군수가 되었다. 이듬해 사예(司藝)·사성(司成)·장령(掌令)이 되었다.장령으로서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며, 1545년에는 교리·봉상시정·사간을 역임하였다.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소윤과 대윤 간의 세력투쟁이 첨예화하더니 마침내 소윤 윤원형(尹元衡)의 횡포가 심해지자 명종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직을 포기하고 청도 운문산(雲門山)에 입산하였으나 을사사화 때에 장살당하였다. 1568년(선조 1)에 관직이 환수되고 영천(永川)의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