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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歲戊申(1968)...南炳基
跋: 戊申(1968)...八世孫 炳彪 炳與
刊記(推定): ...(行狀)...丁卯(1747)...考終于正寢...(跋)... 此篇之始發於~三百...戊申(1968)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권대규(權大規)[1676~1747]는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문신이다. 1715년(숙종 41) 문과에 급제한 후 삼례도찰방(參禮道察訪)·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등을 지냈다.
권대규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만칙(萬則), 호는 치와(恥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의협(權宜悏)[1579~1644]이고 할아버지는 권경(權璟)[1604~1666]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증직된 권득여(權得與)[1636~1717]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부호군(副護軍) 김상원(金尙瑗)의 딸이다. 부인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이지환(李之煥)의 딸이다. 형은 권대림(權大臨)[1659~1723]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시에 입격하고, 171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삼례도찰방·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헌부감찰 및 현감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1718년(숙종 44)의 왕의 병환이 완쾌되지 않는 것을 염려하였고 인사행정인 도목정사(都目政事)가 끝났는 데도 영남 출신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임용되거나 복직되지 않은 사실에 아쉬워하였다. 1719년(숙종 45) 당시 동궁(東宮) 경종과 승지(承旨) 유숭(兪崇)의 불화에 크게 안타까워했으며 이후 낙향해서는 학문 활동에 전념하였다.
8대손 권병여(權炳輿) 등이 1968년 권대규의 유문을 정리하여 『치와집(恥窩集)』을 간행하였다
권대규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