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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3
**이언적(李彦迪, 1491년 11월 25일 ~ 1553년 11월 23일)은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조선국 의정부 좌찬성 등을 지냈다.본관은 여주(驪州)(혹은 여강(驪江)), 자(字)는 복고(復古), 호(號)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 시호(諡號)는 문원(文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양동마을 태생으로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문묘 종사와 조선왕조 최고 정치가의 영예인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한 명이다.(이들 6현은 이언적, 이황, 이이, 송시열, 박세채, 김집이다.)학문적으로는 조선 최초의 철학적 논쟁인 태극논쟁(太極論爭)을 벌여 한국 성리학의 태두가 되었고, 이선기후설(理先氣後設)과 이기불상잡설(理氣不相雜說)을 강조하는 사상을 확립해 이황에게 계승시켜주었으며, 보물 제 586호로 지정된 수고본 일괄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겨 영남학파의 창시자로 추앙됨으로써 1573년 경주 옥산서원에 주향되었고, 1610년 문묘에 종사되었다. 그밖에도 중종 때 왕세자였던 인종의 사부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어, 왕세자 이호(훗날 인종)의 교육을 맡아보았다.정치적으로는 1513년 사마시와 151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 예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 대사성 등 요직을 역임한 뒤 종1품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과 원상(院相)에 올랐다. 사후 선조로부터 1568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1569년 종묘의 명종 묘정에 배향되어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그의 종가(宗家) 종택(宗宅)은 경주 양동마을 무첨당이며, 현재 17대 종손(宗孫)은 이지락(李址洛)이다.이언괄은 그의 아우이며,[1] 손경(孫曔)은 그의 외사촌 동생이며,[김사(金嗣)는 외가 쪽 친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