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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5상3
**序: 戊寅(1938)...金寗漢
**개항기 대구 출신의 학자.
하동기(夏東箕)[1870~1933]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성범(聖範), 호는 오재(悟齋) 또는 심강(心岡)이다. 할아버지는 하석윤(河錫胤)이고, 아버지는 하상락(河祥洛), 어머니는 서재곤(徐在坤)의 딸 달성서씨(達城徐氏)이다. 동생은 하동규(夏東奎)이다.
하동기(夏東箕)는 1870년(고종 7)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났다. 1897년부터 동생 하동규와 함께 송병선(宋秉璿)[1836~1905]·송병순(宋秉珣)[1839~1912] 형제에게 학문을 배웠다. 1897년 가을에는 5대조인 열암(悅菴) 하시찬(夏時贊)[1750~1828]이 지은 『팔례절요(八禮節要)』를 간행하였다.
1910년에 한일병합조약[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탄식하며 「방심잠(放心箴)」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1912년에는 스승인 송병순이 한일 합병이 이루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렀으며 송병순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였다. 1914년에는 하시찬의 유허비를 독무재(獨茂齋) 남쪽에 세웠다. 만년에는 동생 하동규와 함께 독무재에서 강학하며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933년 사망하였다.
하동기의 문집으로는 『오재집(悟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