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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3-1-3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경정(景靜), 호는 탁청헌(濯淸軒). 증조할아버지는 충좌위 부사정(忠佐衛副司正)을 지낸 곽승양(郭承陽)이고, 할아버지는 귀후서 별제(歸厚署別提)를 지낸 곽거(郭琚)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지정(郭之貞)이며,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엄한백(嚴漢伯)의 딸 영월 엄씨(寧越嚴氏)이다. 부인은 현감을 지낸 이심(李審)의 딸 철성 이씨(鐵城李氏)와 서윤(庶尹)을 지낸 이승서(李承緖)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곽황(郭趪)[1530~1569]은 1530년(중종 25) 현풍현 솔례리(率禮里)[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서 출생하였다. 1556년(명종 11) 27세 때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1563년(명종 18)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예안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도산 서당(陶山書堂)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있던 이황(李滉)을 찾아가 종유(從遊)하였다. 예안 현감으로 재임하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3년 만인 1565년(명종 20) 공장(公藏)과 사축(私蓄)이 크게 늘었다. 또한 이황(李滉)의 제자인 조목(趙穆)·김부필(金富弼)·금응훈(琴應壎)·금난수(琴蘭秀) 등의 인사들을 도와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창건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어 고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1568년(선조 1) 함양 군수로 부임지를 옮겼다. 이듬해인 1569년(선조 2) 순찰사 차원(巡察使差員)으로 삼가현(三嘉縣)에 이르렀을 때 병을 얻어 수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2권 1책의 『탁청헌 실기(濯淸軒實紀)』가 전한다.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징리에 있다.
1707년(숙종 33) 청백사(淸白祠)에 배향되었다. 청백사는 지금의 이양 서원(尼陽書院)[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2호]으로 달성군 현풍읍 대리에 있다. 달성군 구지면 징리에 곽황의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