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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3-1-2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유생이자 의병.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사림(士林)의 모습을 보이며, 주자학(朱子學)에 전념하고 반청 의식이 높았던 유생이다.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달부(達夫),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수제용감 판관(守濟用監判官)을 지낸 여훤(呂烜)이고, 어머니는 해평 김씨(海平金氏) 송암(松庵) 김축(金軸)의 딸이다.여효주(呂孝周)[1608~1654]는 1608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출생하였다. 1626년(인조 4)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628년(인조 6)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1630년(인조 8)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42년(인조 20)에 생원과와 진사과에 모두 합격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가려다가 화의(和議) 결정 소식이 전해져 눈물을 머금고 중단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여효주의 생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후 세상에 뜻을 잃고 칩거하였다.4권 1책의 시문집 『남계집(南溪集)』이 전하며, 병자호란 때 비분강개하여 지은 「부강변(扶綱辯)」과 삼학사(三學士)의 충절을 읊은 제문 등이 실려 있다.경상북도 성주 중리산(中里山) 해좌원(亥坐原)에 장사 지냈다.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가 묘갈(墓碣)을 짓고,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행장(行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