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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53-1-1
**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문인.
이중경은 17세기 청도 지역에서 학덕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재지 사족 가운데 한 명이다. 이중경은 800편이 넘는 시(詩)와 산수 유기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 그리고 연작 시조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 청도 지역 최초의 사찬 군지 『오산지(鰲山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慶叔), 호는 수헌(壽軒) 또는 오대산인(梧臺散人)·봉옹(鳳翁)이다. 증조할아버지인 이흥지(李興智)가 소요당 박하담의 딸에게 장가들어 경기도 금천(衿川)에서 청도로 옮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기옥(李璣玉)이고 어머니는 거제 반씨(巨濟潘氏)로 반몽벽(潘夢壁)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중경의 가계는 지방 사족 가문과의 통혼으로 청도 지역에 기반을 잡고 재지 사족의 지위를 유지한 집안이었다.
이중경(李重慶)[1599∼1678]은 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인 예천에서 생활하면서 외할아버지 반몽벽(潘夢壁)과 외숙 반로(潘潞)에게 자학(字學)과 사서(史書)를 배웠고, 아버지와 친분이 있었던 동호(東湖) 정윤위(鄭允偉)를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았다. 17세에 아버지의 스승인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찾아가 아버지가 기축옥사에 얽혀 고통받은 전말을 들은 이중경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 20세에 청도로 돌아와 청도의 향유(鄕儒) 박형(朴炯)의 딸에게 장가들고, 가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중경은 자타가 산수벽(山水癖)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산수를 사랑했는데, 44세 때 운문산 유람을 통해 오대(梧臺)를 발견하고, 49세에 오대에 정사(精舍)를 구축하면서 운문산 일대와 관련된 많은 작품을 남겨 청도 지역의 산수 문학을 꽃피웠다
이중경의 저서로는 필사본 『잡훼원집(雜卉園集)』 2권 1책이 전하고, 1959년 후손들이 『잡훼원집』의 일부와 산문을 합해 연활자본 『수헌 선생 문집(壽軒先生文集)』 6권 2책을 간행하였다. 특히 『잡훼원집』에 수록된 800여 수가 넘는 시와 연작 시조 등은 도학(道學)이라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의 한가로움, 농촌 사회의 다양한 생활 모습, 당대 현실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애민 의식, 산수 속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리는 이상향을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등 드러난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청도 사족의 산수 문학의 특징적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산수 유기 「유운문산록」, 청도 지역 최초의 사찬 군지 『오산지』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이중경의 묘소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 있다.유림의 천거로 청도군 도림사(道林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