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좋음
크기:20*28센치
분량:50장내외
보외1층앵글54-1-2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충곡서원은 원래 백제 장군인 계백과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 18위가 배향되어 있다. 8명의 선현을 제향한다 하여 팔현 서원(八賢書院), 육신 서원(六臣書院)이라 불렸던 기록도 있다.
충곡서원이 위치한 산록은 수락산이고, 마을 이름은 충장동(忠壯洞)이다. 무장인 계백 장군을 주벽으로 하고 좌우에 문인을 배향한 것은 계백 장군의 백제를 위한 우국충절 때문이라기보다 계백 장군의 전사지가 바로 근처에 있고, 가장골에 있는 계백 장군 묘와도 가까운 거리에 존재한다는 점 등을 고려한 서인들의 의사가 내포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제향 인물들의 공통점은 거의 충절인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순수한 충절 서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문제는 김익겸의 존재이다. 호서사림의 종장인 김장생의 손자인 김익겸의 제향은 김장생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7현과 충절이란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나 냉정하게 볼 때 사육신 등과는 비중 면에서 차이가 크다. 더욱이 위차가 배향도 아닌 병향의 자리에 있어 의문이 더해지며, 후에 김익겸의 아들 김만중이 제향된 것도 같은 배경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적면소재지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4.5㎞ 정도 가면 남쪽으로 향하는 지방도 2호선이 있다. 이 길로 4㎞ 정도 거리에 충곡리가 있고, 충곡2리 충곡마을 방죽골 안쪽 남향 사면에 충곡서원이 자리하고 있다.충곡서원의 창건 연대에 관해서 최근에 발간된 자료들에는 1680년(숙종 6)으로 적고 있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두록(俎豆錄)』 등은 모두 1692년(숙종 18)으로 기록하고 있어 차이가 보인다. 이것은 1629년(인조 7)에 정식 서원으로 창건되기 전에는 계백이나 사육신 등만을 모신 채 사당 형태로 존재해 왔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 때인 1935년 사당만 중수하였는데,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멸실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 지방비를 들여 당초 규모대로 복원하고 1996~1997년에 대대적으로 복원하였다.건물 구조로는 홍살문을 입구로 하여 외삼문, 동·서 영재, 내삼문, 사우 순으로 서향하고 있다. 충곡서원의 규모는 목조 와가로 복원된 사우가 39.67㎡, 동재와 서재는 각각 26.45㎡, 내삼문과 외삼문은 각각 13.22㎡로 되어 있다.충곡서원의 건립 연대는 크게 1680년(숙종 6)과 1692년(숙종 18)으로 나뉘고 있다. 서원의 건립 연대는 자료에 따라서 1년에서 4년까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이는 건물의 완공 시기와 제향인의 봉인 시기가 다를 경우에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충곡서원의 경우처럼 연대가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앞으로 충곡서원의 건립 연대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김장생의 손자인 김익겸이 위차 문제에서 배향이 아닌 병향의 자리에 있어 당시 논산 지역에서 김장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