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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7-1-5
**序: 昭陽作噩(1933)...崔鉉弼, 金東鎭
跋: 鄭澤九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몽양(鄭夢陽)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헌길(獻吉), 호는 우졸재(迂拙齋)이다. 고조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정안번(鄭安藩)이며, 증조는 부사(府使) 정호인(鄭好仁), 조부는 정시행(鄭時行)이다. 부친은 진사(進士) 정석주(鄭碩冑)이며, 모친은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생원(生員) 김방열(金邦烈)의 딸이다. 부인은 달성 서씨(達城徐氏) 서복래(徐復來)의 딸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정일계(鄭一桂)와 정일후(鄭一垕)이며, 사위는 권한(權翰)이다
정몽양은 1679년(숙종 5) 3월 12일에 태어나 1745년(영조 21) 2월 14일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형 정규양(鄭葵陽)과 정만양(鄭萬陽)에게 수학하였으며, 횡계(橫溪)에 터를 잡고 살면서 오로지 학문만을 닦았다. 두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정중기(鄭重器)와 정간(鄭榦) 등 동문들과 함께 형이 남긴 글을 모아 『훈지양선생문집(壎篪兩先生文集)』을 발간하였다.
목판본인 2권 1책의 『우졸재문집(迂拙齋文集)』이 있다.
정몽양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華北面) 자천리(慈川里) 달산(達山)에 있으며, 완산(完山) 이후(李垕)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