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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7-1-5
**이달의(李達意)[1616~1705]는 문과 급제 후 함안군수·단천군수·사헌부장령·첨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이달의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정(以正), 호는 석촌(石村)이다. 아버지는 회양부사를 지낸 이숭언(李崇彦)[1582~1666], 어머니는 무공랑 권집(權集)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성균관학유를 지낸 이휘음(李徽音)[1575~1609], 증조할아버지는 산음현감을 지낸 이개립(李介立)[1546~1625]이다. 부인은 계공랑 박요(朴炓)의 딸 반남박씨(潘南朴氏)와 진사 채진형(蔡震亨)의 딸 평강채씨(平康蔡氏)이다.
이달의는 1616년(광해군 8)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갈산리(葛山里)[지금의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654년(효종 5)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얼마 후 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1657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박사·봉상시직장·성균관전적·예조좌랑 등을 거쳐 1670년(현종 11) 함안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함안군에는 큰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는데, 재임하는 동안 힘껏 구휼하였다.
이달의는 1674년에는 단천군수로 부임하였다. 단천군에는 은광(銀鑛)이 있었는데, 전임 단천군수들이 은광에서 많은 이익을 챙기곤 했으나, 이달의는 청렴함을 지켜 남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았다. 1677년(숙종 3) 내직에 제수되었지만,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 등을 이유로 외직을 구해 삼척부사로 부임하였다. 1680년 경신환국이 일어나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정국이 변하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았다. 1692년에도 사헌부장령으로 있으면서 상소문을 올려 숙종에게 덕이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세자를 보양할 방책을 건의하였다. 1700년(숙종 26)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