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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7-1-4
**被傳者: 尹仁浹(1451-1597)
序: [?]屠維作噩(己酉, 1909)...宋秉珣
跋: 上之四年(1910)...朴昇東
跋: 九世孫[尹]炳一
**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 정착한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심(德深), 호는 아암(牙巖). 증조할아버지는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를 지낸 윤사하(尹師夏)이고, 증조할머니는 봉사(奉事)를 지낸 김식(金埴)의 딸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상주 목사를 지낸 윤탕(尹宕)이며, 할머니는 장령(掌令)을 지낸 전영령(全永齡)의 딸 용궁 전씨(龍宮全氏)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윤응벽(尹應璧)이고, 어머니는 이필(李畢)의 딸 옹진 이씨(瓮津李氏)이다. 부인은 배적(裵積)의 딸 성주 배씨(星州裵氏)이며,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윤인협(尹仁浹)[1541~1597]은 1541년(중종 36) 한양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윤탕의 부임지인 상주목(尙州牧)에 있을 때 경상도의 산수를 유람한 뒤 이곳에 터를 잡아 살 뜻을 가지게 되었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1571년(선조 4) 대구도호부 하남면[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복거(卜居)하였다. 1585년(선조 18) 낙동강 변의 문산(汶山)에 영벽정(映碧亭)[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소재]을 지었다. 영벽정에서 당시 대구도호부를 대표하던 정사철(鄭師哲)·권응인(權應仁) 등의 인사들과 도의를 맺고 함께 학문을 연구하였다
윤인협의 저술 대부분은 소실되고, 남아 있는 약간의 시고(詩稿) 등을 엮은 3권 1책의 『아암 실기(牙巖實紀)』가 전한다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서부곡(西部谷)에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관련항목 보기에 파평 윤씨 재실인 첨모재(瞻慕齋)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