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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7-1-4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전(士銓), 호는 운재(雲齋). 도윤길(允吉)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도안(都安)이고, 할아버지는 도이경(都以敬)이다. 아버지는 양진당(養眞堂) 도맹녕(都孟寧)이고, 형은 도형(都衡)이다. 운재공파(雲齋公派)의 파조로, 첫째 아들은 도태보(都台輔), 둘째 아들은 도몽호(都夢虎)이다. 이원정(李元禎)이 편찬한 『경산지(京山志)』의 초고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암곡(巖谷) 도세순(都世純)은 증손자이다.
도균(都勻)[1483~1549]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나 살았다. 17세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하에 형 도형과 함께 들어가서 배웠다. 김굉필은 도균에게 『소학(小學)』을 주면서 이것을 학문의 근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여러 사림들이 귀양을 가고 배척당하는 것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벼슬에 대한 뜻을 접었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시를 지으면서 일생을 보냈다. 문장과 학문이 뛰어났다. 당시의 사람들은 일가양난(一家兩難)[한 집안의 두 형제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큰 인물]이라 일컬었다.
저서는 『운재일집(雲齋逸集)』이 있다. 서(序)는 장복추(張福樞)가 작성하였다. 「인성책(人性策)」·『효경집해(孝經集解)』·『성리회찬(性理會纂)』·「소학부(小學賦)」 등의 글들을 지었다.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에 있다.
성주에 학문을 일으킨 종장으로 숭앙되어,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도응(都膺)과 자신의 형 도형과 함께 운천서원(雲川書院)에 배향되었다. 1818년(순조 18) 동몽교관(童蒙敎官)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