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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7-1-2
***被傳者: 曺致虞(1459-1529)
序: 歲丁未(1967)...金榥
跋: 十五代孫狄 歲丁未(1967)...十六世孫 建鉉 文鉉
刊記: (後識)...先生歿(1529)後四百有餘載始印實紀...丁未(1967)
**조치우(曺致虞)[1459~1529]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순경(舜卿), 호는 정우당(淨友堂). 아버지는 영암군수를 지낸 조말손(曺末孫)이다. 부인은 창원박씨(昌原朴氏)이다.
조치우는 1494년(성종 25) 과거에 급제하여 1495년(연산군 1) 예문관 검열로 있었고, 1498년(연산군 4)에 사간원 정언이 되었으며, 1499년(연산군 5)에 성균관 전적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중종반정 후 대구부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 이름을 알렸고, 1519년(중종 14)에는 예천군수로 있었으며, 그 뒤 사옹원정(司饔院正)이 되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봉양하다 1529년(중종 24)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에 있다
1529년 청백(淸白)으로 옥비(玉碑) 이좌(二坐)를 하사받아 하나는 조치우의 묘가 있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에 세웠고, 다른 하나는 부인의 묘가 있는 창원시 북면 지개리에 세웠다. 영천시에는 조치우의 제사를 모시는 유후재(遺厚齋)가 있고, 창원시에는 창원박씨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 추감당(追感堂)가 있다. 1787년(정조 11) 밀양에 있는 오봉서원(五峰書院)에 봉향되었다. 오봉서원은 대원군 때인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8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