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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6-1-6
**被傳者: 崔興義
序: 乙卯(1975)...南龜洛
跋: 歲乙卯(1975)...崔卨永
**조선 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했던 학자.
최흥의(崔興義)[1756~1794]는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상리에서 살았던 학자로서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1705~178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강우 지역의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며 강학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방보(方甫), 호는 숭애(崇崖). 고조할아버지는 이익남(李翊南)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경유(李慶濡)이며, 할아버지는 이수천(李壽天)이다. 아버지는 이문석(李文錫)이며, 어머니는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인 박중영(朴重榮)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경암(敬庵) 안경임(安景任)의 후손인 노경운(盧慶運)의 딸 안강 노씨(安康盧氏)이다.
최흥의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지런하였으며, 몸가짐이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문사(文詞)가 더욱 진전하며, 필법도 뛰어나서 묘경(妙境)에 이르렀다. 심경(心經)과 성리학(性理學)에 오묘한 뜻을 깨쳤다고 전한다. 지평 김종경(金宗敬), 부형(婦兄) 노의(盧{氵+意}), 김윤경(金潤慶), 박사준(朴思濬), 홍천휴(洪天休), 정언수(鄭彦修), 김순(金淳) 등과 지기로 지내며 도의를 연마하였다.
1748년(영조 24) 옻골[칠계(漆溪)]에 사는 최흥원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최흥원의 아들 동계(東溪) 최주진(崔周鎭)[1724~1763]과 계사(溪舍)나 산사(山寺)에서 강학하였다. 최설영(崔卨永)이 1975년 『숭애 실기(崇崖實記)』를 편찬하였다
묘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에 위치한 부인사(符仁寺) 아래 선암(仙庵) 서쪽 기슭에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상리 경주 최씨 세거지에 경목재(敬睦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