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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외1층앵글46-1-6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희순(希舜), 호는 성재(誠齋). 증조할아버지는 김홍보(金洪寶)이고, 할아버지는 김동진(金東振)이다. 아버지는 김상옥(金相玉)이며, 어머니는 김창운(金昌運)의 딸 서흥 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장용칠(張龍七)의 딸 옥산 장씨(玉山張氏)와 김형진(金亨振)의 딸 일선 김씨(一善金氏)이다.
김사흔(金士忻)[1804~1867]은 1804년(순조 4) 경상도 현풍현 금촌(琴村)[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재질이 있어 16~17세부터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고향에서 친우들과 함께 비슬산(琵瑟山)과 유가사(瑜伽師)를 소요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다.1845년(헌종 11) 종족(宗族)과 의논하여 고향 금산(琴山) 아래에 선조들을 기리는 긍구당(肯構堂)과 경모당(景慕堂)을 건립하였다. 철종 연간 삼정(三政)의 문란과 관련된 책문을 조정에 올렸다.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비변사(備邊司)에서 천거하였으나, 시세가 예전과 다름을 보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866년(고종 3) 거주지를 경상도 영산현(靈山縣)[현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문집으로 2권 1책의 『성재 유고(誠齋遺稿)』가 전한다.
묘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목단리 목단촌(牧丹村)에 있다.